[이 취미·이런 삶] '제주 여인' 표정 담기 26년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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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장터 할머니 등 제주 여닝들의 굴곡진 삶을 렌즈에 담아 온 현을생 과장.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그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역경을 딛고 일어선 제주땅의 어머니-.

26년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은 현을생(47) 제주시청 기획감사과장은 공무원보다 오히려 '제주의 여인을 카메라에 담는 사진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1974년 9급 서기보로 제주시청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고향(서귀포)을 떠나 홀로 제주시에서 자취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고된 일속에서 그의 유일한 취미는 산행이었다. 산악회에 가입해 국내 명산도 수시로 찾아다녔다.

그런 그를 아버지는 걱정했다. 혹이나 조난사고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77년 어느 봄날 아버지는 일본여행길에서 사 온 '아사히 펜탁스'카메라 1대를 그에게 줬다. 카메라에 빠지면 산행길은 자연히 접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날개를 단 기분이었죠. 그렇지 않아도 자연의 풍광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는데…." 그는 78년 카메라동호회에 가입, 아예 본격 사진수업에 들어갔다. 주말만 되면 하루 종일 10~20㎞의 거리의 제주해안을 뒤지고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자동차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지방 언론사를 수시로 드나들며 사진기자를 만나 무작정 "가르쳐달라"고 매달린 적도 많았다.

"78년 아버지가 61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숨지고, 81년엔 어머니마저 돌연 세상을 떠나 무언가에 미치고 싶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세상을 향해 렌즈를 맞추고 있을 즈음 그의 눈으로 '제주의 여인'들에 박히기 시작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자식들을 키워내는 섬땅 제주도의 어머니를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싶더라구요." 그 때부터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나 장터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 등으로 맞춰갔다.

10여년 작업의 결과로 그는 87년 '제주여인'이란 첫 개인전을 열었다. 98년엔 '제주 여인들'이란 이름의 첫 사진집도 냈고, 이후에도 3차례의 개인전을 더 열었다.조만간 두번째 사진집을 낼 계획이다.

현 과장은 "제주의 어머니들을 대하다 보면 모든 걸 끌어안는 드넓은 바다를 생각하게 된다"며 "카메라 렌즈가 그 진실을 깨닫는 창이 돼 주었다"고 말했다.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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