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로스쿨 1200명으로 묶는 건 반개혁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로스쿨 도입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법조계와 법학계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핵심은 역시 정원 문제다. 지난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도 정원 규모에 대해서는 공식 의견을 채택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 사법시험 수준인 1200명 안이 로스쿨 근거법 부칙에 슬그머니 담겨 궁극적 기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흔히 정원 문제는 로스쿨 제도의 본질이 아니라 이해 조정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고작 두 개 만들 수 있는 이 1200명 안이야말로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고 반개혁적인 것이다. 법학교육과 법무 서비스 시장 개혁의 대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어이없는 상황이라 단언할 수 있다.

즉 지금까지 90여 법학부가 무제한으로 경쟁해 온 법학교육 분야를 인위적으로 뒤집어 이를 몇몇 학교에 독점시키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반열에 속하는 나라가 법학 교육시장에 전에 없던 진입장벽을 새로 만들어 이를 독과점화하자는 발상이다. 법조 진입을 가로막던 기존의 높은 장벽으로도 모자라 그에 앞선 법학교육 분야마저 배타적.특권적 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것도 개혁인가, 그러고도 열린 참여라 말할 수 있는가.

독점적 로스쿨이 도입되면 현재의 사법시험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로스쿨 입시로 고스란히 옮겨갈 뿐 아니라 더 큰 폐단이 초래될 개연성이 크다. 즉 로스쿨 입학이 지역화.계층화.신분화해 개방성 면에서 문제를 키울 소지가 적지 않다. 입시관리 면의 공정성은 현재의 사법시험보다 현저하게 후퇴할 것이다. 로스쿨 낭인의 양산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법조인들에게 부담스러운 이야기지만 법학.법무 서비스 시장 개혁은 진입장벽을 제거하고 시장을 활짝 여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미국식 로스쿨 졸업으로 변호사가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 법조의 경쟁력과 다양성은 넓은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을 통해, 변호사의 부단한 자기 노력과 서비스 경쟁을 통해 창출되는 것이다. 한국보다 인구가 적은 캘리포니아가 연 8000명의 변호사를 배출한다.

로스쿨 도입은 이 땅의 고급 인력 수급 구조를 개혁하는 이정표적 사건이 될 수 있다. 오래전부터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법학.의학.한의학으로 쏠리는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국가적 재난을 예고하는 이 심각한 상황을 바로잡는 가장 확실한 길은 최우수 인재가 몰리는 분야의 진입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법무서비스 분야에 충분한 경쟁이 도입된다면 초임 변호사의 평균 수입 또한 좋은 직장을 얻은 대졸자 수준으로 조정될 것이다. 고소득의 유인이 사라지면 최우수 인재가 법학이나 의학으로 쏠리는 현상 역시 구조적으로 통제된다. 주지하다시피 법학과 법조에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요컨대 1200명을 위한 로스쿨, 독점화한 로스쿨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법학.법무 서비스 분야는 최대한 개방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전문화.정보화.세계화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이 땅의 시민사회에 대해 한국의 법학과 법조가 그 소임을 다하는 출발점이다.

어렵거나 부담스럽다고 정원 문제를 어물쩍 넘겨서는 결코 안 된다.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이익상황을 온존시키는 1200명 안과 법학계가 주장하는 3000명 안의 절충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법률에서 범위의 형태로 명문화돼야 한다.

정호열 한국법학교수회 사무총장 성균관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