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 새음반 '미드나이트…' 포크에 힙합 혼합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벡(본명은 벡 헨슨). 봅 딜런과 존 레넌, 그리고 믹 재거를 뒤섞은 인상의 이 깡마른 백인 청년은 포크에 힙합을 섞은 기상천외한, 그러나 아주 매력적인 음악으로 팝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94년 슬라이드 기타 선율에 거친 힙합 리듬과 자유분방한 가사를 얹은 '루저(패배자)' 란 곡으로 데뷔한 벡은 이듬해 활기 넘치는 '흑백 혼혈' 사운드의 데뷔음반 '오들레이' 로 음반시장의 승리자가 됐을 뿐 아니라 곧장 작가(Autheur)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 언론은 그를 90년대가 낳은 가장 독창적이고 솜씨 있는 음악인의 하나로 지목하며 '팝계의 타란티노' 로 부른다.

그런 벡이 무척이나 흥겹고 변화무쌍하며 고급스러운 새 음반 '미드나이트 벌쳐스(한밤의 독수리)' 를 발표했다.

다소 침체된 분위기의 2집 '뮤테이션스(돌연변이)' 를 낸지 1년만이다.

새 음반에서 벡은 60년대 오리지널 소울(샤우팅 창법이 특징인 정통 흑인음악)과 80년대 크로스오버 팝소울을 혼합해 또한번 선이 굵고 유쾌한 변신을 한다.

60년대 소울 선구자 제임스 브라운과 80년대 소울 팝스타 프린스의 사운드를 섞은 듯한 이번 음반은 삑삑대는 기계음, 귀에 거슬리는 긁는 소리, LP 시대로 돌아간 듯한 복고풍 브라스, DDR(댄스 댄스 레볼루션)홀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이 범벅돼 듣는 이를 소리의 요지경으로 빨아들인다.

무한대의 혼성모방과 장르 뒤틀기로 상징되는 90년대가 집약된 양상이다.

그러나 이 음반은 벡 자신의 일관된 방향의식과 기막힌 녹음 테크닉 덕에 풍성하고 편안하며 달콤한 축제로 변한다.

수록곡 11곡이 모두 색깔을 달리하며 가슴에 와 안긴다.

벡은 때론 귀엽고, 때론 거칠며, 믹 재거와 프린스를 넘나드는 매혹적인 전자변조 음성으로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첫번째 싱글 커트곡 '섹스 로즈' (Sexx Laws)는 성(性)에 대한 낡은 생각을 깨자는 내용으로 외설과는 거리가 멀지만 제목 때문에 18세 미만 판금조치를 받은 곡이다.

미국인들은 이 음반을 늦은 밤 홀로 운전하며 듣기 좋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이라면 소주를 좀 들이켜 막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할 때 들으면 어울릴 듯하다.

벡의 '미드나이트 벌쳐스' 는 올해는 물론 지난 10년간 발표된 팝음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수작이다.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