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민·관람객 같이 즐기는 문화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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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예쁘게 보일 필요도 없고 해서 막 밀어붙였죠. 세금 아깝다고 고개 돌리던 의원님들이 두 손 들고 도와 줄때까지.”

“나 할머니 관장이야” 했지만 김홍희 경기도미술관장 손톱에는 젊은이도 소화하기 힘든 묘한 색깔의 매니큐어가 빛나고 있었다. [김성룡 기자]

김홍희(61)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할머니 관장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뿌듯해했다. 29일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서 문을 연 경기창작센터가 김관장의 자랑거리다. 200억원 예산이 30억원으로 깎였지만 흔들리지 않고 직원들을 다독였다.

“내 집 살림하듯 알뜰하게 쓰자고 잔소리를 했죠.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전시를 만들고 작가를 돕는 게 큐레이터, 즉 학예연구원이거든요. 요즘 미술관이나 화랑에 가보면 백화점 명품관 직원인양 구는 큐레이터들이 있어요. 미술관은 쇼핑센터가 아니죠. 미술을 즐기러 온 관람객에게 고품질 공공서비스를 줘야죠.”

옛 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 7개 동중 3개 동을 수리해 개관한 경기창작센터는 김관장이 강조하는 서비스 정신에 충실하다. 국내외 작가 24명이 이곳에 머물며 작업하고 주민들과 창작수업을 나눈다.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일반인을 위해 금속·목공·사진·도예·미디어 공방을 개방한다. 작품 보관 공간이 좁거나 어려운 작가들에게 시급한 작품 창고도 마련했다. 바닷가에 자리한 이점을 살려 ‘국제 서머 페스티벌’도 기획했다. 관광객을 위한 전시 겸 미술시장을 여름에 열어 경기창작센터를 외국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지역경제에도 한몫하겠다는 복안이다.

“21세기 미술관을 저는 포스트 뮤지엄(Post Museum)이라 규정합니다. 20세기까지 있어왔던 미술관을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죠. 1차로 미술관 문턱을 낮추고 대중화시킨 것이 경기도미술관이었다면 경기창작센터가 2차 임무에 나선 겁니다. 남들 다 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나 소장품 확보로는 미래의 미술관이 될 수 없죠.”

김관장은 “작업실을 만들어 작가들에게 제공했던 기존 아트레지던시를 하숙집이라 본다면, 경기창작센터는 일종의 국내외 미술네트워크 클럽이자 지역민 문화공작소”라고 설명했다.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작가나 큐레이터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곳 경기도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 미술관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했다.

경기창작센터 개관을 기념해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리는 ‘2009 레즈아티스 컨퍼런스’가 그 첫걸음이다. 레즈아티스(Resartis)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무처를 둔 아트레지던시 운영자들의 국제적인 연합기관. 전세계 아트레지던시의 발전과 교류방안을 찾으려 해마다 국제컨퍼런스를 여는데 올 회의를 김관장이 유치했다.

“한국미술이 세계 꼭대기에 서는 건 경매에서 비싸게 팔리는 작가가 많이 나온다고 되는 일은 아니죠. ‘리스트 저널리즘’, 다시 말하면 미술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화가나 화랑, 수집가를 줄 세우는 수준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걸 개척해야죠.”

김관장은 경기도미술관과 경기창작센터가 지역민과 함께 하며 내는 시너지효과를 눈여겨봐달라고 부탁했다. 2010년까지 나머지 4개 동을 뜯어고치면 70여 개 작업실과 숙소를 갖춘 복합 미술단지로 거듭나게 된다.

“잘 그린 미술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걸 보여주는 미술이 필요한 때죠. 경기창작센터가 그 이슈를 생산하는 본바닥이 될 겁니다. 할머니 관장 일은 거기까지.”

정재숙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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