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부천필하모닉 말러 교향곡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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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은 한 마디로 말해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난다. 귀를 진동시키고도 남는 폭발력을 지닌 4관편성의 교향곡에서도 관현악의 포효 다음엔 언제나 고요한 심연(深淵)에서 길어올린 긴 노래가락이 펼쳐진다.

지난 27일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부천필하모닉(지휘 임헌정)의 말러 교향곡 전곡연주 시리즈의 막이 올랐다. 말러 대장정의 첫발을 내딛은 이날 공연은 부천필의 변신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관악파트의 활약을 다소 자제하면서 현악 앙상블의 깔끔한 면모를 강조해온 것과는 달리 소리가 좀 거칠더라도 오케스트라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관악파트의 앙상블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말러 교향곡에 담긴 '질풍노도' 의 낭만주의 정신을 잘 그려냈다. 임헌정의 말러 해석은 어느 쪽인가 하면 20세기 음악의 출발보다 베토벤.브람스의 연장선에 가깝다.

전반부에서 연주된 관현악 반주에 의한 말러의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는 이날 공연의 핵심인 제1번 교향곡 '거인' 에 대한 음악적 해설이었다. 제2곡 '아침에 들길을 걸으면' 과 제4곡 '연인의 푸른 눈' 이 각각 제1번 교향곡의 1악장과 3악장에 에피소드 악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독창자로 나선 바리톤 전기홍은 음악의 본질을 꿰뚫는 깊이있는 해석과 여유있는 호흡, 세련된 음악적 처리, 유연하고 초점이 확실한 발성이 돋보였다. 박진감 넘치는 교향곡이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연결돼 있다면 이에 반해 '젊은이의 노래' 는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준 곡이었다.

말러 교향곡 시리즈의 다음 공연은 내년 5월30일(제2번 교향곡 '부활')에 열린다. 예술의전당이 오랜만에 내놓은 대형 기획물이지만 10회 공연을 3년이란 기간에 분산시켜 다소 빛바랜 시리즈가 되고 말았다. 3년에 걸친 교향곡 전곡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외부 단체에 대관료를 면제해 주고 협연자를 초청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제작비를 들이지 않는 공동기획의 한계다. 외국처럼 10회 공연 중 몇번은 객원지휘를 맡기더라도 시즌(1년)내에 전곡 연주를 마치는 것은 상주(常住)오케스트라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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