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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사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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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971년 7월 9일 파키스탄 도시 라왈핀디를 방문 중이던 헨리 키신저 미 대통령안보보좌관이 갑자기 사라졌다. 야햐 칸 파키스탄 대통령과의 만찬 일정도 취소됐다. 갑작스레 배탈이 나 수도에서 80㎞ 떨어진 휴양지에서 이틀간 요양할 것이란 공식발표가 뒤따랐다. 키신저가 다시 라왈핀디에 나타난 것은 11일. 그는 미뤄둔 일정을 소화하고 다음 행선지인 파리로 향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키신저 잠적의 진상이 밝혀진 건 그로부터 닷새 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특별성명 발표에 의해서였다. 키신저가 파키스탄에서 비밀리에 베이징으로 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회담했다는 내용이었다. 죽의 장막을 열어젖힌 닉슨-마오쩌둥(毛澤東) 회담은 007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키신저의 밀사 외교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2000년 3월 휴가 여행을 떠나는 차림의 남성이 공항 출국심사대에 섰다. 심사관이 신분을 알아보자 그는 특별히 당부했다. “개인적으로 휴가 가는 것이니 상부에 보고는 하지 마세요.” 아니나 다를까,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의 책상 위에는 ‘박지원 문화부 장관, 모월 모일, 휴가차 출국’이란 정보보고 서류가 올라와 있었다. 관가의 정보보고란 돌고 도는 법, 의도한 대로 박 장관은 진짜 휴가를 다녀온 것으로 소문이 퍼졌다. 첫 남북 정상회담을 태동시킨 박 장관의 잠행도 이렇게 치밀했다.

2001년 9월 일본 외무성의 아시아·대양주 국장에 취임한 다나카 히토시는 주말마다 해외로 출국했다가 월요일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 출근하는 생활을 근 1년간 반복했다. ‘주말 행각’의 실체가 드러난 건 이듬해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 방문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였다. 그 사이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기 위해 제3국에서 북한 밀사를 만난 횟수는 30여 차례에 이른다. 밀사 외교의 보안 유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더구나 ‘미스터 X’라 불린 북한 밀사의 신원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2009년 10월 남북한의 밀사가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제3국에서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사실이 초기 단계에서 공개돼 버렸다. 무성한 소문과 정황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논의는 없다며 부인만 해오던 정부의 모양이 우습게 됐다. 이런 엉성한 보안 수준으로 남북 정상회담이란 대사를 도모한 용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