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에 남은 마지막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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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와대 사직동팀의 '옷 의혹' 내사결과 보고서 유출사태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몇달 전 파업유도 의혹사건으로 현직 간부를 구속한 데 이어 서경원사건 부분 재수사로 수사검사를 조사하는 진통을 겪고 있는 검찰은 이제 검사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에 있던 식구와 전직 총수를 사법처리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검찰의 곤혹스러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같은 상황을 보는 국민의 마음도 혼란하고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두번도 아니고 잇따라 벌어지는 공권력 핵심의 비상식적인 일탈(逸脫)에 국민이 느끼는 실망감과 분노는 크고, 정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정도다.

검찰이 이번 사태에 대한 수사에 착수함으로써 '옷 의혹' 수사는 특별검사와 검찰로 이원화됐다. 우리는 이 사건의 모든 의혹이 제대로 밝혀지려면 특별검사팀이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이왕 검찰이 나선 만큼 특검팀 수사와 보완적 관계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옷로비 의혹과 위증 부분은 특검팀에 맡기고, 문건유출과 그에 직결된 축소은폐 조작 혐의 등은 검찰이 수사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찰이 이번에는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점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정부 전체로는 국가문서의 유출로 드러난 국가기강과 국정질서의 해이(解弛)를 수습한다는 데 수사의 목적이 있지만 검찰로서는 최악의 상태로 손상된 위상의 회복 가능성이 판가름난다고 할 정도로 명운(命運)이 달린 수사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정도(正道)의 수사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수사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소환과 조사 전과정에서 전직 검찰총장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자를 수사한다는 자세를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검찰이 이번 수사를 통해 재기(再起)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실한 내용을 내놔야 한다. 문건유출이 수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그에 대한 범법혐의를 가리는 정도여서는 안된다. 이미 이 사건은 문건유출을 계기로 '옷로비 의혹' 에서 '신동아그룹 로비의혹' 으로 확대됐다.

문건을 공개한 박시언(朴時彦)씨 등을 통해 신동아측이 어떤 로비를 펼쳤으며, 그것이 신동아사건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특검의 수사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검찰은 김태정-박주선-박시언으로 연결된 로비의혹뿐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 대상이 됐었다고 밝힌 로비시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까지 소상히 밝힐 의무가 있다고 본다.

또 이제 더욱 분명해진 '옷 의혹' 축소조작 부분에 대해서도 특검팀이 할 수 없다면 검찰이 스스로 진상을 캐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정도(正道)검찰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정치로부터의 독립이 시급하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직동팀은 항상 정치성으로 문제가 돼왔다.

이번 기회에 해체하는 것이 검찰로서도 바람직하다. 사실상 검찰에서 파견된 인물이 사직동팀 운영을 맡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다. 검찰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 차제에 사직동팀을 해체하는 용단을 대통령이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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