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의 계절…죽어도 좋을 열병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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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명실상부한 '문학의 시대'였던 70년대. 신문사 문학담당기자로 신인 탄생의 순간을 현장에서 겪은 문학평론가 정규웅씨의 '신춘문예 수상(隨想)'을 싣는다. 60년대 문단풍경을 다룬 저서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최근 펴내기도 한 필자는 65년 중앙일보에 입사, 문학담당.문화부장.논설위원을 거친, '신춘중앙문예' 30여년의 산증인이다.

지금은 데뷔 경로도 다양해지고, 재능만 있다면 데뷔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도 문학활동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려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신춘문예에 '운명' 을 거는 문학지망생들이 많았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이들은 밤잠을 설치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새해 첫날 가슴 뿌듯한 감격의 주인공이 되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문학을 '목 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 라고 표현한 문인이 있지만 신춘문예야 말로 그들에겐 '목 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 였다.

실제로 60년대 초엔 신춘문예 단골 낙방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고, 60년대 중반엔 남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응모해 당선한 예도 있었다. 70년대 중반에 한 시인지망생은 기성시인의 작품 가운데서 몇줄씩 빼내 모자이크처럼 엮어 응모해 당선했다가 취소되기도 했다.

표절.모작(模作).대작(代作)의 사례도 많았다. 비뚤어진 열망의 결과들이다.

75년엔가 신춘문예 시상식장에서는 이런 해프닝도 벌어졌다. 시상자가 시상대에 서고 사회자가 소설 당선자를 호명해 맨 앞줄에 앉아있던 여성당선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뒤쪽 객석에서 한 20대 여성이 쏜살같이 튀어나와 시상자의 앞에 서는 것이었다. 진짜 당선자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당당했던 것이다. 그녀는 쫓겨나면서도 '내가 진짜' 라고 소리소리 외쳤다. 눈물겹게도 그녀는 '신춘문예병 환자' 였다.

73년의 소설당선자였던 박범신(朴範信)의 당선작은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스크린하다가 건져올린 것이다. 지금은 예심에도 신중을 기해 이런 실수가 생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신춘문예에 당선하는 것이 요행일 수도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제도상의 허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1천 편 중에 한 편, 1만 편중에 한 편이 뽑혔다 해도 그것을 복권에 당첨되는 것에 비유할 수는 없다. 물론 당선작의 수준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 불운하게 탈락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도저히 당선작이 될 수 없는 작품에 당선의 영예를 씌워주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새해의 첫 문학축제' 라는 데 비중을 둔다 한들 무엇이 문제겠는가.

하기야 심사위원이 누구냐에 따라 당선작의 수준과 경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등의 문제와 함께 이런저런 허점들이 신춘문예 무용론의 배경을 이루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신춘문예제도가 70여년간 현대 한국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功)을 퇴색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현재의 문단인구 중 3분의 1에 가까운 숫자의 문인들이 신춘문예 출신이라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 각자가 신춘문예를 겨냥해 갈고 닦은 피나는 문학수업이 먼 훗날까지 두고두고 문학적 성과의 토대를 이루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문학지망생들이 '운만 좋으면' 당선할 수도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문학의 길은 멀고 험하다. 피와 땀과 눈물로 신춘문예는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나무지만, 그러나 아무나 오를 수 있는 나무는 분명 아니다.

글=정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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