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비서관 전격경질 배경] 박시언씨 떠오르자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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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6일 오전 8시20분에 출근한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은 곧바로 박주선'(朴柱宣)'법무비서관을 불렀다. 비서관의 경질은 그 자리에서 20분 만에 결정났다. 그러고는 朴비서관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만나 사표를 제출했다.

오전 11시30분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朴비서관 사표 수리를 발표했다. 청와대가 발빠르게 움직인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는 특별검사의 수사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옷 로비사건을 둘러싼 축소.은폐 기도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현 정권에 2중으로 도덕성의 문제를 던져준다.

청와대 문건의 외부 유출도 심각한 사태다. 朴대변인도 朴비서관 경질 배경의 첫번째 이유로 이것을 꼽았다.

한 관계자는 "朴비서관도 문제지만 대통령 보고문건이 유출돼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문건관리에 소홀했던 김태정'(金泰政)' 전 검찰총장의 책임이 보다 크다" 고 말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번 문건의 유통 경로에 민간인 신분인 신동아건?고문 박시언'(朴時彦)'이란 로비스트가 등장한 점이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진상이야 어찌됐든 朴씨가 현 정권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로비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은 옷 로비와는 또 다른 문제다.

한 관계자는 "朴씨의 등장은 우리가 '옷 로비는 고관부인들을 상대로 한 단순 로비이며, 실패한 로비' 라고 주장해온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권력형 로비' 사건으로 전환될 수도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이날 朴전비서관이 朴씨의 실체를 본인 입으로 순순히 인정한 것도 시간을 끌 경우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를 지경이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이쯤에서 문제의 확산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朴대변인이나 朴전비서관 모두 "이제 모든 의혹을 특검에서 풀어주기를 기대한다" 고 말했다.

특검 결과를 놓고 수습의 수순을 밟겠다는 것이다.

金대통령도 이날 다시 한번 "투명하게 조사해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엄격히 묻겠다" 고 다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옷 로비 의혹이 제기된 지 6개월여가 지났지만 의혹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金대통령이 같은 문제로 세번(6월 1일 귀국 기자회견.6월 25일 기자회견.11월 25일 창당준비위 결성대회 치사)이나 대국민사과를 했다" 며 "더 이상 이 사건에 끌려다닐 수 없다는 것이 金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朴비서관의 경질만으로 문제가 수습되기 어렵다는 것이 여권 핵심부의 고민이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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