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김지용씨 '한·중·일 500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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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신의 세대에 새 천년을 맞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행운' 에는 응당 의무와 책임도 느껴지는 법. 그것은 누려온 세기와 맞이할 세기에 관해 좀 더 분명한 태도를 취해보려는 노력을 의미하지 않을까.

소설가이자 시사칼럼니스트인 김지용씨가 쓴 '한.중.일 500년사' (새로운세상.9천원)는 그 노력의 일환이다.

현재의 우리를 있게한 지난 5백년간의 여러 사건들을 '동아시아 3국' 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 인식의 새 틀을 짜보자는 시도다.

물론 저자가 유독 지난 5백년에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시대는 한.중.일 3국이 저마다의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국제 질서라는 새로운 괴물 앞에 눈뜨기 시작한 '교류의 시대' 이자 '침탈의 시대' " 였기 때문.

낯선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책은 수없이 명멸한 3국의 개혁정책으로 나타났고 그 좌절과 성공의 부침을 통해 우리가 경험한 건 '아픔의 역사' 였다.

조선의 '젊은 피' 조광조의 패기와 추락, 미완의 정조 개혁, 환관의 전횡으로 쇠락해가던 명(明)을 살리려던 장거정의 노력과 실패, 그리고 '피와 살이 튀던' 에도의 여러 개혁들. 이러한 시대정신의 유사성은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말에 경험한 '명군의 시대' 에도 나타난다.

강희.옹정.건륭제가 이끈 중국의 황금기, 영.정조의 '조선 후기 르네상스' ,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버금가는 요시무네가 이끈 일본이 바로 그것.

저자는 세 나라의 역사를 '공유된 역사' 차원에서 읽는 것은 다시 반성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임진왜란을 "16세기 말 3국의 정치.경제.사회적 요소가 함께 한반도에서 만났던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과정" 으로 이해하면 "어떻게 제 1.2차 세계대전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겠는가" 라고 묻고 있다.

이 지난한 과정을 통해 "주변을 알고 밖으로 나아가야 하고 어제를 배우며 내일을 추구하자" 는 너무도 지당한 메시지를 저자는 아주 생생한게 독자에게 들려준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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