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나고야의 태양' 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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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은 인구 2천3백명의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로부터 매년 35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이처럼 방문객들이 몰리는 것은 쿠퍼스타운이 '야구의 메카' 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백60년 전인 1839년 쿠퍼스타운에서 첫번째 야구경기가 벌어졌다.

야구의 발상지답게 쿠퍼스타운엔 야구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이 명예전당과 박물관이다. 야구 탄생 1백년을 기념해 세운 명예전당과 박물관엔 야구역사에 영원히 남을 영웅들이 현역시절 입었던 유니폼을 비롯해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현재 명예전당에 등록된 사람 숫자는 2백44명이며, 그중 61명이 생존해 있다.

명예전당에 등록된 야구선수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수는 누굴까. 지난 4월 미국 NBC-TV가 방송한 '야구 영웅 1백인' 에선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선정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야구전문가들은 한 시즌 60개.통산 7백14개라는 루스의 홈런 기록은 깨졌지만 오늘의 메이저리그를 있게 한 가장 큰 공로자란 점에서 루스를 꼽았던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역대 최고선수를 뽑는 시도가 있었다. KBS 라디오가 지난 4월 PC통신업체 넷츠고와 공동 조사한 결과 선동열(宣銅烈)이 역대 최고선수.최고투수로 선정됐다.

선동열은 기록의 사나이다. 11시즌 동안 1백46승.1백32세이브.방어율 1.20.탈삼진 1천6백98개는 당분간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다섯차례의 0점대 방어율은 경이로운 기록이다.

지난 96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선동열은 주니치(中日)드래건스의 마무리 전문투수로 활약했다. 늦게 시작했음에도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 4년동안 10승4패98세이브라는 훌륭한 기록을 세웠다.

선동열의 활약은 주니치가 올해 센트럴리그에서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본 야구팬들은 선동열을 '나고야(名古屋)의 태양' 으로 부르는 등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식당에 '힘내라 선동열' 이라는 음식메뉴가 등장할 정도였다.

지난 22일 선동열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아직 활동할 수 있는 나이(36세)에 시속 1백50㎞의 강속구가 건재함에도 은퇴를 결심한 배경은 돈 때문이었다.

주니치에 '임대' 형식으로 선동열을 빌려준 해태가 계약기간이 끝남에 따라 임대료를 올리려 하자 주니치가 이를 거부해 공중에 뜬 상태가 된 선동열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카드를 던진 것이다.

이제 불 같은 강속구로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던 선동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마운드에서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그의 모습은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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