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밝혀져야" "또다른 눈치보기"…서경원 재수사 법조계 반응 엇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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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이 서경원 전 의원의 밀입북 사건과 관련, 당시 평민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의 1만달러 수수 및 불고지 혐의를 재수사하는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 말이 많다.

10년 전 사건을 검찰이 느닷없이 달려들어 다른 결론을 내리려 애쓰는 것이 볼썽사납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진실규명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검사 출신의 박인환(朴仁煥)변호사는 "지금까지 판사와 검사는 재직 중 잘못이 있어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을 누려왔다" 며 "잘못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수사과정에 조작이 있다면 시효와 상관없이 바로잡아야 하고, 이같은 선례가 있으면 앞으로 검사들이 정치권이나 검찰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물리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정권과 자신의 출세를 위해 검찰권을 부당하게 행사했다면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희생자가 생기더라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 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치인 관련 사건을, 고발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수사에 나선 것은 또다른 형태의 '정치권 눈치보기' 라는 지적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도대체 검찰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현직 대통령이 관련된 사건을 재임 중에 처리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사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사건은 정치적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순리" 라며 "이같은 이유로 고소.고발이 있어도 1~2년 동안 수사하지 않고 사건을 캐비닛에 넣어둔 채 묵혀온 것이 관례 아니냐" 고 반문했다.

지방에 근무하는 경력 10년의 한 검사도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갖가지 의혹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사면받은 것 아니냐" 며 "이미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을 재수사하는 것은 법 논리상으로도 맞지 않다" 고 말했다.

그는 "이미 확정판결이 난 사건을 국민이 다시 가져와 재수사해 달라고 요구할 때 어떤 명분을 내세워 되돌려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고 걱정했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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