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폭풍 … 여권 세종시 해법 요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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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3일 ‘원안+α’를 세종시 해법으로 언급한 이후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여권의 기류가 요동치고 있다.

일단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입장이 ‘원안 고수’ 쪽으로 확 기울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나오기 전만 해도 친박계 일각에서는 “‘차기 정권’의 부담을 줄이려면 세종시 문제를 이번에 털어버리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스’의 생각이 확고하게 드러난 이후 이 같은 의견은 쑥 들어가는 분위기다.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유정복 의원은 25일 “일부에서 박 전 대표가 충청표를 노린다고 비난하는데, 오히려 박 전 대표는 표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한 것”이라며 “법이 통과된 지 4년이나 지났고 예산이 수조원이 들어갔는데 정권을 잡았다고 약속을 뒤집는 것은 정치권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허태열 최고위원은 “세종시 수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밀어붙인다면 행정구역 개편, 정치개혁안, 개헌 등 다른 모든 이슈가 파묻히기 때문에 세종시 논의는 차분히 내년으로 미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시 수정안 찬성 소신을 피력했던 친박계 김무성 의원도 “정부가 대안을 내놓기 전까진 말을 않겠다”며 말문을 닫았다.

친이명박계는 부글거리고 있지만 재·보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이라 공개적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한 주류 측 당직자는 “당이 재·보선에 전력투구하고 있는데 박 전 대표가 돕지는 못할망정…”이라며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친이계 차명진 의원은 “나라가 잘 돼야 당도 잘 될 것 아니냐. 정부가 수정안을 내놓고, 거기에 우호적인 국민 여론이 조성된다면 박 전 대표도 수정안에 동의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친이계 강경그룹에선 “박 전 대표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국민투표 카드로 정면 돌파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친박계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가결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해 국민투표를 검토한 적이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실무적으로 준비해온 총리실도 고민에 빠졌다. 총리실 주변에서는 정운찬 총리가 박 전 대표를 만나 설득 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정 총리의 한 측근은 “현재로선 너무 앞서나간 얘기”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최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전문위원회 위원장인 오세정 전 서울대 자연대 학장을 만나 사업 진척 현황을 파악했다. 총리실 주변에선 세종시에 ▶1000병상 규모의 서울대 병원 설립 ▶기숙사형 특목고·자사고 유치 ▶산업단지 조성 ▶ 이주 주민 인센티브 부여 등의 아이디어를 검토 중이다.

김정하·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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