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마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7면

중독성 있는 것에는 ‘마’자가 붙는다는 우스개가 있다. 경마·마작·마라톤·마사지에 마르크시즘과 마오이즘까지, 어원이 각기 다른데도 마구잡이로 우겨 넣어 보면 정말 그럴듯하다. 물론 중독성 하면 떠오르는 마약의 ‘마’가 일으킨 연상 작용일 것이다.

마약의 아버지는 아편이다. 모르핀과 헤로인도 아편의 자식이다. 아편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약품으로, 발효 지식이 필요한 알코올보다 훨씬 먼저 인간의 손에 들어왔다. 6000년 전 스위스 신석기 유적에서도 아편이 뽑히는 양귀비의 씨앗이 나왔다고 한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으로 알려진 수메르인은 양귀비를 ‘기쁨을 주는 식물’이라는 뜻에서 ‘헐 길(hul gil)’이라고 불렀다. 이집트·그리스에서 아편은 초자연적 힘을 간직한 것으로 대접 받았다.

아편을 교역품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아랍인이었다. 마약을 금지하는 종교적 가르침이 약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몰락과 함께 유럽에서 사라진 아편의 기억은 십자군 전쟁으로 되살아난다. 인도로 가는 항로가 열린 뒤에는 인도의 아편이 유럽에 유입됐다. 인도를 장악한 영국은 아편을 정치경제적 무기로 이용했다. 영국인은 인도산 아편을 수출해 중국인을 중독시켰다. 이를 단속하는 청에 대항해선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중국에서 아편은 오늘날의 커피나 햄버거처럼 팔렸다. 19세기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난 중국인 중독자들은 아편의 세계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마틴 부스, 『아편』).

마약은 여전히 정치경제적 물질이다. 세계 아편의 90%가 생산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벌이는 전쟁은 일면 마약과의 전쟁이다. 유엔마약범죄국(UNODC)은 탈레반이 아편으로 매년 9000만~1억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지난주 보고서에서 추산했다. 옛 실크 로드가 ‘헤로인 로드’로 바뀌고, 러시아와 유럽의 돈이 탈레반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돈줄을 자르기 위해 농민에게 보조금을 줘가며 대체 작물 재배를 권하고 있다. 동시에 세계의 마약 유통망을 옥죄고 있다. 국내에서도 헤로인 정제에 쓰이는 무수초산을 탈레반 거점으로 밀수출한 파키스탄인이 체포됐고, 지난주 이들에게 최고 징역 5년형이 선고됐다. 세계적으로 마약 경계령이 내려진 시기에 10대 교포 유학생들이 마약을 판매하거나 투약하다 무더기로 적발됐다고 한다. 이들의 국제 감각을 진단한다면 ‘마비’ 수준이 아닐까 한다.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