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사망 보상금으로 아프리카에 교실 선물…기아차 연구원 이재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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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 작은 정성이 그들에겐 엄청나게 큰 것이란 사실을 알고 놀랬습니다. 지금은 땅속에 있는 아내도 기뻐할 겁니다. "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기술연구소 연구원 이재후(李在厚.38)씨는 최근 아프리카에 '죽은 아내의 어린이 사랑' 을 심고 왔다.

그는 8~15일 에티오피아에서 대단한 환영을 받고 돌아왔다. 특히 지난 12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의 마을 '히브렛 피트' 초등학교 교실 4칸의 준공식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작은 보람을 느꼈다. 이 교실이 李씨의 후원금 2천만원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 날 이 학교 교사.학생들은 李씨를 위해 태극기를 흔들며 찬양가까지 불러 주었다.

그의 후원금은 지난 96년 1월 출산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사고로 숨진 아내에 대한 보상금. 결혼 9년만인 당시 아내는 셋째 아이를 낳다 병원 측의 실수로 2개월간 앓던 끝에 저 세상으로 갔다. 적은 보상금이 나왔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였지만 너무 기막힌 돈이어서 그냥 쓸 수 없었다.

신분과 사연을 밝히지 않은 채 자선단체 월드비전(옛 한국선명회)에 "값진 데 써달라" 는 부탁과 함께 기탁했다.

월드비전은 추적 끝에 그를 찾아와 용도를 상의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다는 뜻을 전했다. 죽은 아내가 유독 어린이들을 사랑했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의 초등학교에 교실을 지어 주기로 결정돼 그 교실 준공식에 초청받아 다녀오게 됐다. 그는 이번 여행 때 직장 동료들이 보태준 여비조차 몽땅 털어 학용품과 공 등을 사 가 나눠주기도 했다.

"우리 나라의 교실보다 작은 교실에서 1백30여명씩이 공부하면서도 교실이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하고 있더군요. 어찌나 고마워 하는 지 놀랐어요." 李씨는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서도 숨진 아내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李씨는 "특히 6.25때 우리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한 것 같아 마음이 더욱 뿌듯하다. 그들을 앞으로도 힘이 닿는 대로 계속 도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고 말했다.

광주〓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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