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 재작성 논란] 문일현씨 원본 베낀 또다른 작성자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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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폭로한 '언론장악 문건' 이 문일현(文日鉉)씨가 작성한 원본이 아닌 것으로 최종 판명될 경우 사안의 '폭발력' 은 엄청나다.

먼저 '文씨가 소신을 담아 작성한 문건을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에게만 보냈으나 본인에게 전달되지 않은 채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에게 유출됐으며, 이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폭로했다' 는 그간의 사건 구도가 완전히 허물어진다.

鄭의원이 공개한 문건의 작성자가 文씨가 아닌 별도의 인물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文씨가 지난 6월 '언론장악 문건' 과 별도의 사신을 작성, 李부총재에게 보냈다는 것은 검찰에 의해 공식 발표된 부분이다. 실제로 검찰은 文씨의 노트북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서 두 문건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鄭의원이 폭로한 문건이 원본이냐 사본이냐" 는 부분만 문제가 돼왔을 뿐 작성 자체에 제3자가 개입했을 가능성에 대해선 무시돼 왔다.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볼 때 공개된 문건은 제3자가 文씨의 것을 가공한 보다 진전된 언론장악 문건일 수도 있다. 李부총재측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든 언론장악을 위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개연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언제였든 文씨는 공개된 문건이 자신의 작품이 아님을 알게 됐을 것이다. 따라서 왜 文씨는 이 부분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도 의문이 생긴다. 李부총재와의 의리로 본인이 모든 것을 덮어썼을 가능성이 있으나 다른 배경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문건이 文씨에 의해 작성됐느냐는 처음부터 많은 의문이 뒤따랐었다. 문건에선 많은 맞춤법 오류가 발견돼 경력 15년의 노련한 기자가 어떻게 초보적인 맞춤법조차 틀렸는지부터 석연치 않았다.

또 아무리 李부총재 보고용이라 할지라도 15년간 몸담았던 조직에 세무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부분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자아냈었다.

한편 전문가들은 어떤 경우든 공개된 문건이 훈민정음95에 의해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文씨가 문건을 일반 프린터로 인쇄해 인편으로 보냈더라도 문자의 글꼴은 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훈민정음95는 팩스로 보내든, 프린터로 뽑든 글꼴은 변하지 않는 탓이다.

공개된 문건은 '바탕체' 혹은 '신명조체' 등으로 작성된 게 확실하나 문자들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미뤄 오래된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작성자의 신분도 어렵지 않게 추적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비슷한 글꼴들도 자세히 뜯어보면 개별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어 어느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됐는지 판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개된 문건이 文씨 작품이 아닌 것으로 최종 판명되면 검찰은 베일에 가려진 '실제 작성자' 를 찾아내야 할 입장에 몰릴 게 분명하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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