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강우식 '노인일기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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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모 이 아무개 여사는 85세까지 혼자 살다가 돌아가셨다.

외아들도 시집간 두 딸도 나름대로 모시지 못한 까닭이 있겠지만 나는 장모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본다.

불효스럽게도 딸들은 어머니를 뵈올 때마다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한 발 먼저 간 남편 곁으로 가시라고 틈만 있으면 강요했고 마침내 장모는 단식 아닌 단식을 시작하여 체중 25㎏에 그만 쓰러지시고 말았다.

살아있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저녁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 의 끝도 못보고 말았다.

혼자 사는 외로움의 그 지독한 깊이를 누가 헤일 수 있으랴. 나는 입관시 미라 같은 그 몸뚱어리가 고독으로 찌들고 안이 막혔음을 똑똑히 보았다.

장례 후 장모의 방에는

누가 먹으라는 것인지 정성스레 담근

노오란 모과주가

장롱 속에 한 병 있었다

- 강우식(51) '노인일기2'

보부아르가 말하기를 늙은 여자를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삼는 화가가 없다고 했다. 늙음은 그것을 옹호하기 전에 일단 추악이기도 하다.

고려에 고려장이 있다 했고 일본 어디에도 나니와산에 늙은 어미를 버리는 풍속이 있다 했다. 현대 핵가족 생활에서 노인은 올데갈데 없다. 아이들도 냄새가 난다고 싫어한다.

한 시인은 85세 장모의 죽음을 냉철하게 그려내고 있다. (내 생각에는 존댓말 따위도 싹 없애는 편이 좋겠다) 시라고 하기에는 줄줄이 산문이고 산문이라 하기에는 뒤의 4행이 시적 충격을 높이고 있다. 처절한 사연이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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