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다람쥐들은 알고 있단다 웃음보 터지는 세상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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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무지개를 먹어 버린 봄봄 씨
이진진 글, 백지원 그림
뜨인돌어린이, 64쪽, 8500원

독서만큼 엄숙주의에 빠지기 쉬운 분야도 드물 터다. ‘재미로 보는 책’이란 평가는 책에 있어선 욕에 가깝다. 꼭 뭘 남겨야 대접받는 책이 된다.

교훈이든, 정보든 뭐든 남겨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추천도서 목록에라도 들어, ‘경력’이라도 남길 수 있어야 좋은 책 취급을 받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점점 책을 따분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이 책은 읽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환상동화다. 무지개를 먹어버려 곤경에 처한 곰 이야기를 다뤘지만 “아무거나 함부로 먹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지개를 먹어버린 뒤 곰 봄봄씨가 겪는 일들을 하나하나 따라간다.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순전히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상황인 만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점점 궁금해진다. 그 호기심을 하나하나 채우며 독자 역시 맘껏 상상력을 발휘하면 그만이다.

아기곰 봄봄 씨와 다람쥐들, 그리고 아기돼지 삼형제 등 다양한 동화 주인공들이 함께 식탁 앞에 둘러앉았다. ‘상상력’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뜨인돌어린이 제공]

봄봄씨가 먹어버린 무지개는 사실 다람쥐들이 세상의 비밀을 알아내 적어놓을 때 쓰는 물감이었단다. 그동안 알아낸 비밀이란 게 ‘엄마의 무릎은 사실 반 정도가 스펀지로 만들어져 있어서 아기들이 눕기에 편하게 되어 있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진 것은 사실 예쁜 꽃을 발견했기 때문이지 낮잠을 자서가 아니었다’ 등이다. 구석구석 킥킥 웃을 만한 내용이다.

그뿐인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화 속 주인공들의 면면도 참 재미있다. 헨젤과 그레텔 남매는 언제나 단 것을 사정없이 밝혔고, 백설공주는 수평선을 구경하고 싶어 남편을 졸라 무려 723일이나 항해를 한 경험이 있다.

‘물감’을 잃어버린 다람쥐들에게 숲 속에 사는 동화작가 할머니는 구세주였다. “얘들아, 무지개 연못이 있는 곳을 알려줄게. 너희도 여기서 함께 지내면서 세상의 비밀들을 들려주겠니?” 할머니의 제안에 다람쥐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봄봄 씨도 할머니 곁에서 부지런히 물을 길어주고 꿀도 따드리며 살게 됐다. 이게 바로 동화 속에 세상의 비밀이 많이 숨어 있는 이유이고, 또 동화 속 주인공에 곰이 많은 까닭이란다. 초등 저학년용 짧은 동화지만, 이야기 구성이 입체적이다.

오감을 깨우는 표현들도 책의 특징이다. ‘사각사각 시원하면서도 몽글몽글 달콤하고 반짝반짝 기분 좋은 맛’ ‘오랜 잠을 자고 난 뒤 몽롱해져서 흐느적흐느적 행운의 길을 따라 걸을 때나 만날 수 있어요’ 등이다. 고운 수채화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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