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경련의 거듭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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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거듭 자기개혁을 선언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어제 김각중(金珏中)회장대행 체제를 출범시킨 이후 첫 회장단회의를 열어 발전특위 구성을 확정짓고 5대 그룹 이외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해 전경련을 명실상부한 재계의 본산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전경련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전경련 스스로 '재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씻겠다' '신뢰받는 재계상을 확립하겠다' 며 반성과 자기개혁을 다짐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전경련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조직 자체가 업체대표들로 구성된 재계 모임이라기보다 개별 오너 중심이고 따라서 전체 기업계나 재계보다 거대기업이나 오너들의 이익대변에 급급해왔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물론 임의단체다. 오너들의 친목클럽 성격이 짙고 따라서 그 구성이나 운영에 바깥의 주문이나 간섭은 부당하다는 항변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전경련이 대내외적으로 재계를 대표하는 얼굴인 데다 정부와 재계간의 가교역할을 맡는 등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묵직한 비중 때문이다.

그동안 고도성장의 견인차로서,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로서 기여도 많았지만 경제력 집중 심화와 정경유착 등 폐해도 적지 않았다.

관치(官治)와 정경유착에서 민간자율과 시장경제시대를 맞아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주역으로서 전경련의 거듭나기는 시대적 요청이다.

전경련이 명실상부한 재계의 본산이 되려면 그 구성부터 달라져야 한다. 중견그룹과 벤처기업 신생업종의 대표들을 중심으로 발전특위가 구성되고 올부터 외국인기업도 받아들이는 등 회원구성은 다양해지고 있기는 하다.

다만 전체예산의 50% 이상을 5대 그룹계열사들이 부담하고, 예산을 넘어서는 '플러스 알파' 는 재벌 오너들의 개인 호주머니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재벌 오너 위주의 경영방식에 얼마나 변화가 올 것인지가 문제다. 경영방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전경련의 자기변화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

전경련의 역할 또한 대기업 이익의 대변이나 방어위주에서 국가경제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승적 자세로 바뀌어야 한다.

회원사로부터 돈을 거둬 갖다 바치는 정경유착은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회원기업들의 투명경영을 선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은 근절시키며 경제논리에 충실한 실천적 대안으로 재계의 두뇌역할을 해야 한다.

또 눈을 밖으로 돌려 한국경제의 실상을 바깥에 제대로 이해시키고 한국적 기업경영의 특수성 등에 관한 대응논리도 적극 개발해 한국경제의 싱크탱크와 '대변인' 노릇도 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만간 의무회비를 낼 필요가 없는 임의단체가 되는 것을 계기로 경제단체간에도 경쟁이 벌어져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이해는 최악의 상태다. 미래지향적인 기업윤리와 정직한 기업풍토를 정착시키고 과감한 체질개선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기업과 그 전경련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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