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눈 스님이 수행끝에 찾은 "난 누구인가"-현각스님 '만행…'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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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자신을 향한 이런 질문은 끝없이 계속되지만 여전히 답은 공허하다.

그것은 본명 폴 뮌젠(35.미국 뉴저지 출신), 법명 현각(玄覺)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가 펴낸 '만행(萬行).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1~2권.열림원.각권 7천원)는 읽는 이의 가슴을 자꾸 아리게 한다.

현각은 도대체 무엇을 찾아 방황하다 이 땅에 머물며 수행정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철학.문학 전공).독일 프라이부르크대(쇼펜하우어 철학전공).하버드대학원(비교종교학 전공)을 거친 이력을 보노라면 그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사치스럽게 여겨질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학창시절 온통 자신을 억누르고서도 끝내 흐릿하기만 했던 '진리' (Veritas)의 참모습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89년 12월 어느 날, 하버드대 지도교수인 일본인 마사토시 나가토미의 권유로 특강을 나온 한국인 스님 숭산(崇山.72.일본을 거쳐 72년 미국 포교활동에 나섬.서양에서는 티베트 달라이 라마, 베트남 틱 낫한, 캄보디아의 마하 거사난다와 함께 현존하는 4대 성불로 추앙받음)을 강단을 통해 만났다.

"태어났을 때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죽을 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삶과 죽음, 인생의 오고 감…. 그러나 변하지 않는 맑은 게 하나 있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그 맑고 깨끗한 것이 무엇인가. "

비교종교학도 폴 뮌젠은 그 설법에 현기증을 일으켰다. 키에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는 물론 동양의 노자.장자를 탐닉하고 독일 유학에서 에머슨의 초월주의 철학까지 만났지만 이런 충격은 처음이었다.

그는 프로비던스의 한국 사찰 홍법원(미국명 : 프로비던스 젠센터)을 찾아가 다시 숭산과 대면했다. "당신은 누구세요?" "제 이름은 폴입니다. " "그건 당신의 몸 이름입니다. 진짜 이름은 뭡니까?" "…"

말문을 잃은 뮌젠은 언젠가 지도교수가 건네줬던 숭산의 영어 법문집 '부처님의 머리에 담뱃재를 털고' 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 11월 첫 한국행. 92년 숭산스님과 동행했던 중국 방문 때 남화사란 고찰(古刹)에서 수계식(受戒式 : 불문에 들어온 사람에게 계율을 주는 예식)을 통해 정식으로 출가했다.

폴 뮌젠에서 현각으로 다시 태어나던 날인 9월7일, 현각은 맨 먼저 미국의 부모님께 용서를 비는 편지를 썼다.

현각은 자신의 출가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나는 어린 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찾고 싶다면 부모.형제.자매를 떠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는 예수의 말씀을 항상 되새기며 살았다.

나의 출가는 바로 거기서 잉태된 것이다. 다만 그 길을 예수가 아닌 부처로 선택한 것뿐이다. " 사실상 개종(改宗)이지만 그는 "참선수행을 하고 경전 읽기에 깊히 빠지다 보면 예수의 가르침에도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는 말로 종교의 일체성을 논하고 있다.

책은 현각의 학창시절 정신적 번뇌에서부터 불교에 귀의, 현재 서울 수유리 소재 화계사와 계룡산 신원사, 그리고 지리산 기슭의 암자를 오가며 행하고 있는 수행의 삶을 잔잔한 톤으로 담아낸다.

특히 그가 지하철 안이나 길거리에서 당하는 수모, 즉 "예수님의 나라 미국에서 온 당신이 왜 사탄의 가르침을 받느냐" 는 힐난의 목소리를 견디는 사연은 눈물겨울 정도다. '정신적으로 나약해진 현대인은 물론 초발심(初發心)이 흐려진 스님들도 한번 집어들 만한 책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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