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조사로 매듭 풀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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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언론문건 사태로 뒤틀리고 꼬인 정치판이 좀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문일현(文日鉉)씨 귀국과 그가 사용하던 노트북 컴퓨터 입수로 핵심적인 의문점들이 규명될 듯했던 검찰수사마저 그다지 전망이 밝지는 않다.

이대로 가면 여야는 검찰수사 종결 후에도 서로 자기 편한 대로 수사결과를 해석하면서 얽힌 실타래 같은 정국을 더욱 꼬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국민이 무서워서라도 그래서는 안된다.

장기간에 걸쳐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문건사태의 초점은 권력에 의한 언론장악 음모가 과연 있었는가, 실행됐는가에 있다.

그 유력한 단서(端緖)로 볼 수 있는 괴문건이 야당에 의해 국회에서 폭로됐고, 뒤이어 온갖 후속 의혹들이 등장해 지금처럼 얽히고 설킨 정국이 조성됐다.

우리는 여야가 지난달말 이미 합의한 국정조사를 최대한 빨리 실시하는 것이 정국정상화의 첫걸음이라고 판단한다.

먼저 국정을 주도할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이 앞장서 증인채택 범위 등에 과감히 양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당도 한치 양보도 없다는 경직된 자세보다는 여당의 타협안을 받아들이고, 조사과정에서 필요하면 다른 증인을 부른다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수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검찰을 의심하고 보는 야당의 태도도 온당치 않다. 검찰수사에서 진상의 일단(一端)이라도 드러난다면 그것 또한 국정조사의 좋은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마치 육박전이라도 하듯 폭로와 '단독국회' 으름장, 장외집회와 고소.고발이 맞부닥치는 정치는 문건사태에 쏠린 국민적 의혹을 풀어주기는커녕 거꾸로 국민쪽에서 정치를 걱정하고, 심지어 정치 무용론(無用論)까지 들먹이게 만들 뿐이다.

이미 두차례에 걸쳐 장외집회를 한 한나라당은 이제 바깥나들이를 그만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상대당 의원에 대한 고소.고발 사태도 정치가 풀 일을 사법당국에 맡기는 또다른 '장외(場外)정치' 인 동시에 우리 정치의 복원력(復原力)부재를 입증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빈축을 사 마땅하다.

공동여당은 그제 선거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국회에 제출해 야당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장외집회 못지 않게 단독국회 또한 정치활동을 포기하는 독선적 행위다. 단독국회로 으름장을 놓기보다 여당이 먼저 성의를 보여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여야 한다.

국정조사가 시급한 것은 당장의 문건파문 해소도 걸려 있지만 전반적인 정국정상화의 출발점도 되기 때문이다.

여야 지도부는 국회에 모여 현재 쳇바퀴 돌 듯하고 있는 국정조사 관련 총무회담에 무게와 성의를 실어주어야 한다.

지금 같은 대립국면은 여야 영수회담을 거론하기에도 주변환경이 지나치게 척박하고 살벌하기만 하다.

여야가 문건사태를 매듭짓고 민생현안에 몰두하려면 먼저 상대를 받아들이고 당략보다 실체적 진실 규명을 앞세우는 성숙한 자세가 절실하다. 여야의 신속하고 제대로 된 국정조사 협상이 꼬인 정국의 매듭을 푸는 첫 작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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