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놀아나는 수사…호프집화재 업주·종업원 진술따라 갈팡질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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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천시 인현동 상가 화재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화인(火因)이 불장난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내지 못할 정도로 부실하다.

인천지방경찰청은 사건 발생(10월 30일) 9일 만인 8일 밤에야 건물지하 히트노래방 종업원 林모(14.구속).金모(17.사망)군이 불장난하다 불을 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수사가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은 경찰 수사가 주로 구속된 호프집 주인 정성갑(鄭成甲.34.구속속)씨와 노래방 종업원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鄭씨와 공무원의 유착관계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회계장부 등 기본적 증거확보를 소홀히 해 鄭씨의 '입' 에만 의존해 왔다. 화인 수사도 종업원의 진술에 따라 왔다갔다 했다.

김병준(金炳俊)인천지방경찰청 차장은 9일 "이번 화재사고는 건물 지하 히트노래방 종업원 2명이 '신나와 석유 중 어느 쪽이 불이 더 잘 붙을까' 라는 불장난을 하다가 일어난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고 발표했다.

林군과 金군이 노래방 내부 수리공사 뒤처리 청소를 하다 소주잔 한잔 분량의 신나를 바닥에 붓고 1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순간 페인트를 지우기 위해 바닥에 뿌려놓았던 신나에 불이 옮겨붙었다는 것이다.

林군은 그동안 화인에 대해 두차례 말을 바꿨기 때문에 경찰이 집요한 추궁을 했어야 마땅했다.

경찰은 林군의 진술을 그대로 인정하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현장분석 결과가 신나 불장난 쪽으로 나오자 비로소 林군을 추궁, 사실을 밝혀냈다.

사건발생 4일 만에 鄭씨 신병을 확보하고 뒤늦게 물증 수집에 나서는 등 초동수사 허점이 이런 문제를 불러온 것이다.

한편 경찰은 이날 이세영(李世英)인천 중구청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소환, 단속 직원들에게 불법 유흥업소에 대한 단속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또 이번 사건으로 직위해제된 전 인천중부서 朴모 총경을 불러 鄭씨와의 유착 여부와 112신고 미처리업소 특별관리 감독을 소홀히했는지 등을 조사했다.

경찰은 鄭씨에게 도피자금을 건넨 權모(34)씨와 수사를 고의로 지연시킨 혐의로 인천 중부서 강력1반장 朴모(43)경위 등 모두 4명을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 중부서 이성환(李成煥.45)경위, 중구청 식품위생팀 8급 신윤철(申允澈.33)씨 등 경찰.구청 관련 공무원 21명(구속 4명.불구속 17명) 등 모두 32명을 사법처리했다.

인천〓김상국.정영진.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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