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10년 맞은 아키히토 일왕] 왕실 현대화로 국민과 거리좁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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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키히토(明仁)일왕이 12일로 취임 10주년을 맞는다. 그는 즉위 기자회견에서 "현대에 걸맞은 황실을 추구하겠다" 고 다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그 약속대로 지난 10년간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 새로운 왕실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 세대의 왕실에 대한 무관심, 장기 불황, 잇따른 대재해 속에서 친근한 이미지를 심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우선 스스로를 변신시켰다.

이제 일왕이 차창을 열고 연도의 시민에게 손을 흔들거나 양로원을 찾아 노인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위로하는 모습은 다반사가 됐다.

전대 히로히토(裕仁)일왕 때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다. 그는 일반인의 몸을 접촉하지도 않았고 차량 이동 중에는 항상 정면만 응시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방문대상도 가리지 않는다. 95년 1월 효고(兵庫)현 남부대지진 때는 경호 문제를 무릅쓰고 현장을 찾아 이재민의 마음을 달랬다. 왕실 일부에서 "친근감이 너무 강조돼 존엄성이 손상됐다" 는 지적을 받았을 정도다.

궁내청이 일왕의 연설을 담은 책 '도(道)' 를 출판키로 한 것도 파격적이다. 지난달에는 유력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일왕이 손수 쓴 과학 수필과 논문이 실려 화제를 모았다.

왕실 문턱도 낮춰 귀임하는 외국대사에게 차(茶)대접을 관례화했고 일왕이 참석하는 행사의 의식도 간소화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해외 순방도 자주 나서 정부가 왕실을 외교에 지나치게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아키히토 일왕은 그동안 동남아.중국.유럽.미국.남미를 찾아 왕실 외교를 펼쳤다. 동남아와 중국 방문 때는 평화국가 결의를 발표, '일왕〓전범' 이란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일왕〓평화' 라는 새로운 이미지 구축을 시도하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적극적 활동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쇼와 시대(76~84년)와 헤이세이 시대(현 연호.89~97년) 9년간을 비교하면서 외빈 접견이 쇼와때 연평균 31.8건에서 헤이세이에는 50.3건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또 공무 외출도 연평균 28건에서 46건으로 늘어났다. 일왕도 때론 여론의 벽에 부딪쳤다. 지난 89년 헌법을 둘러싼 발언은 대표적인 예. 아키히토 일왕은 "여러분과 함께 헌법을 지키고…" 라고 말했다가 호헌파라는 비판을 받자 이듬해 "헌법을 준수하고…" 로 표현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과의 거리감이 줄어들면서 일왕 재위 10주년 행사는 성대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정부가 주최하는 '재위 10년 기념식전' 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식전위원장으로 행사를 총지휘하며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장과 각국 대사 등 약 1천3백명이 참석한다.

또 정치권에서 '즉위 10년 봉축 국회의원연맹' 이, 민간에서는 '즉위 10년 봉축위원회' 가 각각 결성돼 프로야구.축구 선수들과 인기 연예인들이 총망라되는 축하행사와 시가 퍼레이드를 벌인다. 다만 천황제 폐지를 주장해온 공산당은 주최자 명단에서 빠졌다.

도쿄〓오영환.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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