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라빚 줄일 특단의 의지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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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나라빚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부.여당이 '재정건전화를 위한 특별법' (가칭)의 제정을 추진 중이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지난달 국회대표연설을 통해 '재정적자감축법' 제정을 제안한 바 있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는 여야가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채무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정부.여당이 마련한 시안은 앞으로 예산에서 쓰고 남은 세계(歲計)잉여금은 무조건 국가채무상환으로 돌리고, 추경예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편성을 금지하며, 예산증가율을 명목경제성장률보다 낮게 책정해 균형재정 회복시기를 2004년으로 앞당기는 등 자못 의욕적이다.

올 연말까지 국가채무는 중앙정부가 94조2천억원, 지방정부 채무까지 합하면 약 1백11조8천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3%에 이를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전에 비해 거의 배로 늘어났다.

경제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을 추진해가는 과정에서 부족한 세입재원을 국채를 발행하거나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와 충당?때문이다. 그나마 정부의 채무보증과 한국은행의 IMF 차입금은 IMF의 국가채무기준에 잡히지 않는다 해서 계산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금융구조조정 등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후일 회수된다고는 하지만 '숨겨진 빚' 이나 다름없고, 이미 조성된 64조원 외에 내년에 10조~15조원이 더 필요해 가위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이들 공적자금 때문에 당장 예산에서 지출되는 연간 이자만도 6조원이 넘는다.

그러잖아도 각종 연금의 재정상태가 날로 악화되는 데다 국민 기초생활보장과 지식경제기반구축 등에 투입될 재정수요는 엄청나다.

선진국의 경험에서 보듯 한번 늘어난 국가빚은 좀처럼 줄이기 어렵고 따라서 적자 초기단계에서부터 특단의 의지를 갖고 철저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특별법 제정은 당연하지만 나라빚 축소는 법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미국이 이 법 저 법으로 안간힘을 썼지만 이런저런 예외조치 때문에 30여년만에 겨우 흑자로 돌아선 선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출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각 부처의 무리한 예산요구에 있다. '총론 찬성 각론 반대' 식의 부처이기주의나 정치논리에 휩쓸려 각종 편법이 생겨나면 법은 있으나마나가 된다.

2004년까지 균형재정 달성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산제약의 법제화와 함께 효율성이 낮은 세출예산을 과감히 조정하고 특별회계 및 기금의 규모증가도 통제하는 등 엄격한 재정규율을 확립해야 한다.

공적자금은 투입의 최소화와 함께 환수를 촉진시키고 공공서비스에 대해서는 수익자부담원칙을 강화해 국민과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재정의 적자지출은 국가의 장래 복지를 위해 쓰일 때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정기적으로 국가채무백서를 만들어 적자지출의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공표함으로써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법이나 정치적 구호를 넘어선 정부의 특단의 의지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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