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업주 형사처벌조항 삭제…변태영업 속수무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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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2일 오후 11시쯤 서울 서초구 C노래방. "아가씨를 불러올 수 있느냐" 는 손님의 요청에 종업원은 10분도 안돼 접대부를 데려왔다. 노래방측이 속칭 '보도' 라 불리는 접대부 공급책에 연락한 것이다.

접대부는 "요즘 경찰 단속이 없어져 살 것 같다" 고 거리낌없이 말했다. 방마다 가득 찬 손님 중에는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애띤 얼굴의 10대들도 적지 않았다.

최근 노래방 등 10대들이 출입할 수 있는 업소의 단속 규정이 지나치게 완화돼 이들 업소의 변태 영업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의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청소년 보호정책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정부는 노래방 관련 조항을 지난 5월 9일부터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 에서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로 넘기면서 변태영업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모두 삭제했다.

이전 법령에는 주류 판매.접대부 고용.특수시설 설치 등의 변태영업 행위가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경찰청으로부터 관련 업무를 넘겨받으면서 형사처벌 규정을 모두 뺀 채 행정처분 조항만 둬 변태영업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형사처벌은 너무 가혹하다' 는 업계 입장이 받아들여졌다" 며 "행정처분으로도 변태영업을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노래방 변태 영업 등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삭제되면서 지도단속권 또한 경찰에서 일선 기초

자치단체로 넘어갔으나 정작 자치단체들은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단속활동을 거의 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은 지난 8월말 '룸살롱.단란주점 등 유흥주점을 제외한 접객업소에 대해서는 경찰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점검하는 형태의 직권 단속을 하지 말라' 고 지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부패의 고리를 끊는다며 경찰 단속을 사실상 금지시킨 조치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10대들이 출입하는 노래방.호프집 등의 변태영업이 성행하는 것이 문제" 라고 지적했다.

최근 둔산 신시가지가 조성된 대전시 서구에는 노래방 2백50개와 오락실 1백50개, 비디오방 11개 등이 성업 중이다. 담당 구청에선 2명의 직원이 1주일에 한번 정도 야간 단속에 나갈 뿐이다.

충남 천안시의 경우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노래방.비디오방.PC방의 단속 실적은 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5건)의 14.5%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 8건도 지난달 28일 문화관광부의 요청에 따라 충남도와 합동 단속을 벌인 실적이다.

아파트 단지에 나이트클럽이 들어설 수 있게 된 것도 정부가 '규제 완화' 를 이유로 지난 4월 30일 건축법 시행령(45조)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김기찬.김선하 기자, 대전〓최준호.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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