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화재참사] 14명 살려낸 인천정보산업고 이경택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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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물론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탈출 방법을 찾았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함께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

1백3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인천시 중구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 당시 14명의 목숨을 구하는 데 앞장선 인천정보산업고 이경택(李京澤.17.2년.사진)군. 같은 반 친구의 생일을 맞아 李군 일행 12명이 호프집을 찾은 때는 우연히도 지하 노래방에서 불이 나기 2분 전.

"호프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내려오려는데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계단을 타고 올라와 무조건 옥상 쪽으로 뛰었어요. " 옥상 연결 문이 잠긴 것을 안 李군 일행은 3층 당구장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유독 가스와 불길이 당구장으로 밀려들었다. 李군 일행과 당구장 주인, 포켓볼을 치던 여자 손님 2명 등 모두 15명이 우왕좌왕했다.

몇 초가 생사를 좌우하는 순간이었다. 도로쪽 창문은 화염이 널름거려 접근할 수도 없었다.

침착하게 주변을 살핀 李군은 당구장 뒤편에 쓰지 않는 녹슨 미닫이 창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죽을 힘을 다해 창문을 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폭 2m 가량 공간이 보였다.

李군은 "모두 이쪽으로 와서 뛰어내려라" 고 외치고 한 사람씩 탈출하는 것을 도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남은 廉모(20.회사원)양은 무서워 뛰어내리지 못하겠다며 버텼다. 이미 출입구 쪽에선 불길이 다가와 후끈한 열기와 시커먼 연기가 실내를 뒤덮었다.

李군은 "그냥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 며 廉양을 설득한 뒤 창문 밖으로 밀쳐냈다. 순간 자신도 숨이 막혀 정신이 아득해지자 3층에서 몸을 던졌다.

이 와중에 친구 5명과 廉양, 당구장 주인 등이 부상했으나 생명엔 지장이 없다. 李군은 어깨를 약간 다쳤을 뿐이다.

키 1m85㎝, 몸무게 95㎏에 달하는 거구인 그에게 교사와 친구들은 여유롭고 차분한 성격이 '큰 일' 을 해냈다고 격려했다.

李군은 지난 6월 사업을 하던 아버지(46)를 잃었다. 그는 "이제 어머니(김관순.39)와 누나(20)를 내가 보살피고 집안을 일으키는 기둥이 되겠다" 고 했다.

李군은 또 "우정을 지키고 약한 사람을 돕는 것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만큼 소중하다고 강조하신 아버지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것" 이라고 말했다.

인천〓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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