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 古物이 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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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부산 D관광에서 6개월째 버스를 운전하는 朴모(49.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씨. 그는 "폐차해야 할 상태인 버스를 몰고 장거리 관광을 갈 때면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순간을 수시로 겪는다" 고 털어놨다.

朴씨는 특히 "새벽이나 늦은 밤에 국도를 과속으로 달릴 때는 핸들이 떨리고 브레이크가 밀려 사고를 낼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 했다.

또 "사고위험 때문에 낡은 차를 운전하지 않으려고 업주에게 로비하는 운전기사도 있다" 고 실토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이 회사버스 34대 중 68%인 23대가 출고후 7년 된 낡은 버스다.

신규 관광 버스업체들이 폐차 직전의 낡은 버스로 아찔한 배짱운행을 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완화 차원에서 지난해 8월부터 전세버스사업 신규등록 요건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때 전세버스사업 신규 등록시 출고 2년 미만 차량만 보유토록 한 규정을 폐지했다. 대신 폐차 연한만 출고 10년에서 8년으로 단축했다. 이 때문에 그 이후 생긴 전세버스업체는 처음부터 폐차 직전의 낡은 차를 등록한 뒤 영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 것이다.

28일 오후 부산시 송정동 A관광버스 회사 차고지. 관광버스 30대의 내부는 낡은 흔적이 역력했다. 운전석 계기판의 운행거리는 많게는 90만㎞에서 적게는 50만㎞로 나타나 있다. 시트커버도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바퀴는 대부분 닳을대로 닳았다.

현재 부산시에 신규사업 등록신청을 해 놓은 버스들이며 30대중 25대가 출고후 7년이나 된 중고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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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체제 이전에는 출고된지 5년이 넘고 50만㎞ 이상 운행한 버스는 사고위험 때문에 폐차해 왔던 게 관광버스업계의 관행이었다.

서울 B관광버스의 경우 버스 30대 중 89년 차량이 10대나 되고 있다. 물론 폐차연한을 넘긴 것들이다.

부산의 경우 지난해 8월 이후 문을 연 6개 전세버스업체 버스 2백40대 중 49%인 1백17대가 출고후 5년 된 차량이다. 특히 지난 4월 영업을 시작한 S사는 등록버스 30대 모두 7년 된 노후 차량이었다.

이 회사는 '고물버스 회사' 라는 소문이 나면서 이용객이 없자 결국 지난 7월 자진폐업했다.

대구지역도 지난해 8월 이후 신규등록한 전세버스 가운데 5년 이상 된 차량이 39%를 차지하고 있다.

광주 A관광 대표 金모씨는 "전세버스는 보통 5~6년 되면 교체해 왔으나 요건이 완화된 이후 시외버스 등 폐차해야 할 차들로 회사를 설립하는 곳이 많다" 고 말했다.

부산시 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정부가 차량 연식(年式)규정을 폐지할 때 '차량이 낡을수록 사고위험이 높다' 며 반대했다" 며 "규제완화가 잘못된 대표적 사례" 라고 지적했다.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노후차가 많아도 등록을 받아줄 수밖에 없다" 며 '법개정을 건의했다' 고 말했다.

김진권.홍권삼.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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