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두꺼비’6년 만에 증시 귀환…주가는 주가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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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6년 만의 귀환. 증시는 ‘돌아온 두꺼비’를 반겼다. 19일 상장된 진로는 시초가 4만100원에서 2350원(5.86%) 오른 4만2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달 초 공모가는 4만1000원이었다.

최근 시장 분위기가 냉랭해지면서 동양생명 등 새내기주들이 줄줄이 공모가를 넘는 데 실패한 것을 감안하면 일단 ‘첫 잔’은 산뜻하게 넘어간 셈이다. 상장 일정을 한 차례 연기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공모가를 낮추고, 50%의 배당을 약속한 게 투자자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는 분석이다. 대우증권 백운목 연구원은 “성장성이 높지는 않지만 현금이 꾸준히 들어오는 회사인 데다 배당 수익률이 4~5%는 계속 나올 것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진로는 국내 소주시장의 절반을 차지한 절대 강자다. 설립 이후 증류주를 만들던 이 회사는 1965년 희석식 소주시장에 진출했다. ‘두꺼비’ 상표가 서민들에게 친숙해진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시장의 강자는 전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삼학이었다. 진로는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거친 끝에 70년 1위로 등극했고, 여태껏 왕좌를 놓치지 않았다.

혹독한 시련도 겪었다.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해가다 외환위기가 다가오던 97년 부도를 맞았다. 2003년 진로는 상장 폐지와 함께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하지만 이때도 시장만은 지켰다. 98년 ‘참이슬’ 등 연달아 히트작을 내면서 2005년 소주 시장 점유율은 55%에 달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도 진로를 성장성보다는 안정성이 돋보이는 종목으로 분류한다. 소주가 경기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생필품’의 성격이 강한 데다, 진로가 당분간 왕좌를 위협받을 일은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소주 시장도 2000년 이후 물량 기준으로 연평균 4.7% 성장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경쟁 주종인 맥주와 위스키가 제자리걸음을 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고성장이다.

일등 공신은 ‘도수 낮추기’였다. 도수가 낮아진 만큼 소비량은 늘었다. 소주업체로선 젊은 세대의 입맛을 공략하면서 소주 판매량도 늘릴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의 전략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실제 소주 도수의 변화가 없었다고 가정하면 2000년 이후 물량 증가율은 2.8%에 그친다.

하지만 전가의 보도였던 도수 낮추기도 이젠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소주의 제조 공정이나 풍미를 바꾸지 않으면서 도수를 낮출 수 있는 한계를 16.2도로 본다. 알코올 도수가 그 밑으로 내려갈 경우 와인 등 다른 술과 별 차이가 없어진다는 문제도 있다. 경쟁사인 롯데주류가 최근 16.8도의 ‘처음처럼 쿨’을 내놓은 것을 감안하면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한국투자증권 이경주 연구원은 “소주 도수를 내리는 게 과거처럼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량 기준으로 한 소주 시장의 성장률은 향후 3년간 1~2%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점유율이나 판매량이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높이려면 결국 가격을 올려야 한다. 압도적 1위인 진로는 사실상 가격 결정권을 갖고 있다. 진로의 주가(株價)는 주가(酒價)에 달린 셈이다. 하지만 2005년 하이트맥주에 인수될 당시 부과된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제재가 풀리는 2011년까지는 이것도 그리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진로의 이규철 상무는 “2011년 이후 하이트맥주와의 영업조직 통합이 허용되면 공동 마케팅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데다 중국 시장 개척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도 진로로선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1월 두산의 소주사업부를 인수한 롯데주류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말 11.1%에서 올 7월에는 12.5%로 늘었다. KTB증권 김민정 연구원은 “1, 2위 업체 간 격차가 크기는 하지만 시장의 경쟁구도는 결국 두 업체 간 싸움으로 집약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OB맥주의 향방도 진로의 진로(進路)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민근·한애란 기자

◆진로=올해 설립 85년을 맞은 소주 제조사로 지난해 매출은 7352억원이었다. 수도권에서 특히 강세를 보여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에서는 78.1%, 경기도에서는 84.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자회사로 일본 내 사업을 담당하는 진로재팬을 두고 있고, 중국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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