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 보고서'파문] 정국 전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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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이 '언론장악 음모 보고서' 를 폭로함에 따라 대화를 모색하던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문건의 진위 여부는 6개월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여야가 사활을 걸고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언론장악 음모' 를 부각시키려는 한나라당과 야당의 '문건 날조' 로 몰아붙이려는 국민회의측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총재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정기국회도 여야간 이해가 대립된 정치개혁입법 처리와 맞물려 끝없는 공방과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26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민심 투어' 일환으로 강릉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가 기본을 흔드는 문제" 라면서 "결코 묵과할 수 없다" 고 지적했다.

李총재가 언론탄압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며 강경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가 16대 총선에서 여당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음모' 라는 판단 때문이다.

李총재의 한 측근도 "야당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고 설명했다.

따라서 야당으로서는 전면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李총재가 25일 여야 총재회담을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 면서 사실상 거부한 것도 대여(對與)공세를 당분간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한 때문이라고 이 측근은 전했다.

李총재도 "(총재회담에 대해서는)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고 잘라말했다.

李총재는 25일 대정부질문이 끝나자마자 긴급 당직자회의를 열어 이 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매일 아침 당직자회의가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례적인 대응이다. 그만큼 이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당직자들도 "정권 퇴진으로 갈 수 있는 중대 사안" 이라는 강경 목소리를 냈다.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은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 자유를 침해한 것은 탄핵사유가 될 수 있다" 고까지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같은 판단에 따라 26일 "중앙일보 사태의 배경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張光根부대변인)는 등 논평과 성명을 쏟아냈다.

남은 정기국회 기간 언론장악 음모를 최대 쟁점으로 몰아갈 태세다. 27일 오전 당무회의 대신 의원총회를 소집한 것도 공세 강화를 위한 수순 밟기다.

정형근(鄭亨根)의원은 "언론인 비리 내사자료 등 추가로 폭로할 자료도 있다" 고 경고하면서 단계적인 자료 공개로 공세 수위를 높여 가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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