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진설계 실태조사 '뒷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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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S건축사사무소 金모(32)씨는 최근 엉뚱한 일로 업무부담이 크게 늘었다.

서울 시내 각 구청이 지난 88년 이후 설계한 대형 건축물의 '내진설계 확인서' 를 요구, 관련 서류를 찾느라 바빠졌기 때문이다.

金씨는 "한해에 내진설계를 하는 건물만 1백여건 이상" 이라며 "건축허가때는 어물쩍 넘어간 뒤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새삼스레 요구를 한다" 고 불만스러워했다.

서울시가 지난 10여년동안 법적으로 의무화돼있는 대형 건축물의 내진설계에 대한 확인 작업과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시는 최근 국감 등에서 미흡한 지진 대책에 대한 질책이 잇따르자 뒤늦게 각 구청을 통해 '내진설계 실태조사' 에 나서 설계업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 뒤늦은 내진설계 실태조사〓최근 서울시는 각 구청에 내진설계가 의무화돼있는 대형 건물을 파악한 뒤 이들 건물을 설계한 설계사무소에 '내진설계 확인서' 를 연말까지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시가 그동안 건축허가시 내진설계가 의무화돼 있는 건물에 대한 별다른 검토나 확인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 서울시내 각 구청이 건축허가시 검토하는 30여개 주요항목에도 내진설계여부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시는 현재 서울시내에 있는 내진설계 의무화 건물이 몇 개나 되는지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8년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은 6층 이상 연면적 1만㎡ 이상 대형 건물은 내진설계를 의무화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무책임과 업무태만으로 법은 '종이 호랑이' 가 되고만 것이다.

시 관계자는 "92년 이후 내진설계 여부에 대한 확인은 구조기술사의 도움을 받아 건축사가 하도록 돼있어 건축허가시 일일이 공무원이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고 변명했다.

시는 이번 조사결과 내진설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설계업체에 대한 제재여부도 마련하지 않고 있어 형식적인 조사에 그칠 것이란 비판도 받고 있다.

◇ 설계업체 반발〓시의 '뒷북 행정' 으로 인해 과욋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설계사무소들은 "건축허가 때는 무얼하다 이제와서 확인자료를 요구하냐" 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 C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설계 또는 시공업체가 관할 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을 때 당연히 검토 및 확인이 이뤄졌어야 한다" 며 "현재 이뤄지고 있는 건축허가가 얼마나 형식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라고 지적했다.

구조설계 전문업체인 우람건축 신순호 소장도 "내진설계 여부는 서류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 이라며 공무원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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