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면서 물가안정 장담 경제 낙관 지나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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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기는 이미 과열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도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물가불안에 대한 대비책을 외면하는 등 필요한 정책을 제때 취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우사태로 다시 불어나는 금융부실에 대해서도 근본 처방은 미룬 채 '금리 끌어내리기' 로 부실이 저절로 줄어들기를 바라는 등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내년 물가상승률을 3%선으로 안정시키면서 5~6%의 비교적 높은 성장을 이루겠다는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동시에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저금리와 재정적자라는 팽창적 거시정책을 지속하면서 과연 물가안정이 가능할지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자칫 단기 경기과열이 조장되고, 이에 따라 내년 하반기 이후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재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물가안정을 이루겠다고 하면서도 ▶올 겨울 공공근로 참여자를 50만명으로 늘리고▶한국은행의 장려금이 들어가는 재형저축을 부활하겠다는 등 선거를 의식한 듯한 선심성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강봉균(康奉均)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여름 올 경제성장률이 6~7%로 상향 조정되면서 경기과열 논쟁이 일자 "4분기에는 경기상황을 종합 점검해 (물가상승을 차단할) 선제적 경제안정책이 필요할지 검토하겠다" 고 밝혔다. 그런데 올 성장전망이 9%대까지 올라갔는데도 현재 정부 안에서는 내년 물가에 대해 낙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선제적 안정책에 대한 얘기는 쑥 들어갔다.

이근경(李根京)재경부 차관보는 내년에도 물가안정이 가능한 이유로 ▶아직 실업자가 많아 임금인상이 생산성 상승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기업들은 더 이상 빚에 의존하는 무분별한 투자에 나서기 힘들며▶완만하나마 원화환율의 절상추세가 이어질 것이란 점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김종민(金鍾敏)국민대 교수는 "총통화(M2)증가율이 30%를 넘나들 정도로 돈을 잔뜩 풀어놓고 물가를 낙관하는 것은 금물" 이라며 "물가가 흔들리면 그동안의 경제회생 노력도 허사가 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성장을 다소 낮추더라도 물가안정을 위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고 강조했다.

전성인(全聖寅) 홍익대 교수는 "94~96년 호황 때도 정부는 97년 선거 이후로 모든 문제를 미루다 결국 위기를 맞았다" 며 "선제적 긴축정책과 금융 구조조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고 지적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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