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폐지론 논란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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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원외고 발(發)’ 영어듣기시험 폐지가 전국 30개 외국어고(외고)에 파문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외고를 ‘사교육 유발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며 폐지론까지 들먹이자 외고들은 긴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외고를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다. 이번 기회에 아예 외고를 일반고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자 외고들은 영어듣기시험 폐지와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비롯환 개선안을 내놓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외고 개편 방향은=현재 외고는 과학고 등과 함께 특수목적고(특목고)로 분류돼 있다. 특목고는 학생 선발에서 일반고보다 많은 자율권을 갖고 있다. 시험을 치러 학교 성격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중심이 된 외고 개편 방안은 특목고라는 분류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중2 학생이 고교에 들어가는 2011학년도부터 외고를 자율형 사립고(자율고)처럼 특성화고의 범주에 넣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외고는 현재와 같은 자유로운 학생 선발권을 가질 수 없다. 자율고처럼 선지원-후추첨 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우수 학생’ 유치가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외고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 시험 준비에 매달린다”며 자율고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외고 폐지를 주장해 온 민주당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외고를 특성화고의 범주에 넣더라도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가는 학교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일반계고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교육부총리를 지낸 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외고를 자율고 범주에 넣더라도 고교 입시 부활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재 논의되는 외고 개편의 핵심은 외고의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비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외고의 영어듣기시험 폐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외고 체제 개편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연말까지 외고에 대한 종합 개편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반발하는 외고=김희진 서울외고 교장은 “(외고 폐지는)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평준화 시대에 외고는 우수 학생들의 맞춤형 교육의 장으로 활용됐는데 이를 폐지하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맹강렬 명덕외고 교장도 “학교 다양화 선택권 확대를 강조하는 정부가 특목고를 폐지하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 맞지 않는다” 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장은 "외고를 폐지하려는 것은 마녀사냥식 해결법”이라고 비판했다.

외고 수요가 많은 현실에서 외고 자체를 개편하더라도 제2의 외고가 생겨나 장기적으로 사교육은 줄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욕구를 없애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외고가 자율형 사립고처럼 내신 상위 50% 범위 안에 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으로 뽑는다면 외고용 사교육 열풍이 사그라질 수도 있다. 대신 풍선효과가 우려된다. 영재고인 과학고·영재학교·국제고·자립형 사립고 등에 외고 수요가 몰릴 수 있는 것이다. 중앙대 이성호 교수는 “민족사관고나 상산고 같은 자립형 사립고의 경쟁률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사교육 열풍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반짝 효과를 노린 대책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경기고 등 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 열풍이 불자 정부는 74년 고교 평준화를 시행했다. 추첨으로 고교에 가는 방안을 택한 것이다. 80년대 생겨난 외고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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