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새 1800명 줄어” “그렇게 많이 줄었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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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03면

전국 일반계 고교의 3학년생 수는 2008년에 42만 명이 넘었다. 이 중 서울대에 진학한 숫자는 3129명이다. 전국 일반계 고교생의 0.7%만이 서울대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재수생을 포함하면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0.5% 정도로 더 낮아진다. 지난해 수능 응시생은 58만8000여 명이었다.이른바 ‘386세대’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인 80년대는 사정이 지금과 달랐다. 그 무렵 전국의 일반계 고교 3학년생 수는 35만 명 안팎이었다. 지금보다 5만~10만 명은 적었다. 당시의 서울대 정원은 6000명이 넘었다. 6000명은 일반계 고교 3학년생의 1.7%에 해당한다.

안병만-이장무-김형오-김부겸 ‘서울대 정원 증원’ 대화록

서울대에 응시하는 학생은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늘었지만 정원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물론 80년대에도 서울대 입시 문은 좁았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빈틈’이 안 보일 정도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다.이런 상황에서 80년대에 비해 대폭 줄어든 서울대 정원을 일부라도 원상회복시키자는 물밑 논의가 서울대와 교육부 간에 오갔던 것으로 확인돼 주목된다.

안병만 교육과학부 장관과 서울대 이장무 총장, 정치권의 김형오 국회의장, 김부겸 의원(전 국회 교육과학위원장) 등이 참석한 비공식 만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서울대 정원을 과거 줄어들었던 인원수의 20%가량 늘리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된 것으로 중앙SUNDAY가 입수한 만찬 회의록에서 드러났다. 이장무 총장이 강력하게 정원을 늘려 달라고 건의했고, 안병만 장관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다음은 당시 만찬에서 논의됐던 서울대 정원 관련 발언 전문이다.

이 총장 “한번 줄이면 회복 못하나”
▶이장무 총장=서울대는 지난 10년 동안 신입생 선발 정원을 5000명에서 3200명으로 무려 3분의 1 이상 줄였다. 다른 대학교들은 그렇게 많이 줄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교육부의 대학정책은 정원을 한번 줄이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한번 감원하면 절대 회복이 되지 않는 식으로 리지드(rigid)하게 막는 것보다는 대학이 감원 폭 내에서 자율적으로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은 일일 것이다.

▶안병만 장관=대학 정원 증원에는 원칙이 있다. 대학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눠 수도권 증원은 절대 안 된다는 철칙이 있다. 그런데 기왕에 줄인 것을 회복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다. 정부의 감원 정책에 서울대가 가장 충실히 따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줄였는지는 몰랐다. 감원 복원 차원에서 감원한 정원의 20% 정도는 다시 회복하도록 한다는 식의 조정안을 검토해 보겠다. 서울대가 너무 많이 줄였기 때문에 (일부 정원을 회복하는 문제를) 검토해 보겠다.

▶이장무 총장=서울대의 감원 폭은 다른 대학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대신에 대학원 정원을 늘렸었지만 이마저도 그 후 다시 줄어들었다. 수도권 대학 정원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한번 줄인 정원을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면 앞으로 이런 정책에 어떤 대학도 부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안병만 장관=수도권 내 대학의 변화에 지방 대학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현재 고등학교 졸업생의 84%가 진학한다. 거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원하기만 하면 대학에 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학생 수가 급감한다. 지금 정부 정책은 대학 줄이기다. 안 되는 대학은 폐교를 유도하는 것이다. 대학 정원 증원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대 전체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심도 있게 검토는 하겠다.

(역대로 서울대 정원이 가장 많았던 해는 81학년도. 이때 서울대는 6530명의 신입생을 선발했다. 2009학년도 신입생은 3129명. 81학년도를 기준으로 ‘20% 복원안’을 적용하면 600명 정도가 된다. 95년도 신입생 정원인 5045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서울대는 400명 정도 신입생을 더 뽑을 수 있다. 서울대 정원이 이만큼 늘면 상위권 학생의 입시 경쟁에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김부겸 “명분 달아 정원 늘려야”
정치권 인사들은 서울대 정원의 일부 복원 방안에 대해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서울대가 정원을 다시 늘릴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면서 ‘명분’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김 의원의 아이디어에 이 총장도 선뜻 동의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서울대가 정원을 워낙 많이 줄여서 회복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안병만 교육부 장관과 김부겸 국회 교육과학위원장이 말씀을 나눌 문제인 것 같다.

▶김부겸 의원=사실 서울대는 신입생 선발에서 지역균형선발제도와 같은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차별 철폐 조치)을 앞장서서 실행해 왔다. 감원했던 정원을 돌려주면 그 티오(T.O)를 지역균형선발 정원을 늘리는 데 쓰겠다는 명분을 달자. 성공적인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말이다.

▶이장무 총장=좋은 의견이다. 그렇게 하겠다. 지역균형선발제도에 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도 좋은 제도라고 했다. 지역균형 선발 정원을 현재 750명 선에서 1000명 선으로 확대하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전문가 7인 모두 “서울대 증원 환영”
중앙SUNDAY는 회의록을 입수한 뒤 한영외국어고 주석훈 교사(서울교육청 진학지도지원단 대입정보분석팀장)의 협조를 얻어 일선 고교 진학부장과 입시 전문가 7명에게 서울대 정원을 일부 복원시키는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다.7명의 전문가들은 은광여고 조효완 진학부장(전국진학교사협의회 공동회장), 안산동산고 문순용 3학년부장, 배재고 이정형 교사, 휘문고 신동원 교사(서울교육청 진학지도지원단 자문위원), 광주 고려고 명동률 진학부장, 대성학원 이영덕 학력개발연구소장, 종로학원 이송희 평가부장 등이다.

조사 결과 7명 전원이 서울대 정원 증가에 대해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전문가 7명은 “그동안 서울대가 모집 정원을 너무 많이 줄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휘문고 신동원 교사는 “다른 대학들은 모집 인원을 늘려 대학의 영향력을 키우려 하는데 왜 서울대만 수요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계속 인원을 줄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7명 가운데는 ▶그동안 서울대가 밝혀온 대학원 중심, 연구 중심 대학의 흐름을 뒤집을 명분이 다소 약하다는 점 ▶타 대학의 모집 인원 증원 요구 가능성 및 형평성 논란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대학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시점에서 서울대만 모집 인원을 증원시켜 준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것을 걱정하는 교사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결론은 찬성 쪽이었다.

교육부 “특별한 요인 있을 때만…”
안 장관은 이날 모임 후 서울대 증원 문제를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20년간 지속적으로 줄기만 했던 서울대 정원을 다시 늘리는 문제에 대한 교육과학부 실무진의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교육과학부 주무부서인 대학지원과 핵심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서울대 정원을 일부 복원시키는 방안을 놓고 내부적으로 많은 토론이 있었다”고 전했다. 교과부 내부의 토론 결과는 ‘정원 20% 증가는 불가하다’는 쪽이었다.
대학지원과 관계자는 “대학구조조정 정책이나 수도권 정원 문제 등을 감안해 정책 기조상으론 서울대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대에 ‘특별한 (증원) 수요’가 있을 때 소수 인원 정도라면 그때 가서 사안별로 판단해 볼 수는 있다”고 밝혔다.결국 수도권 편중 문제가 서울대 증원 문제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 인구억제 및 지방균형 발전을 위해 정부는 94년부터 수도권 4년제 대학 신설을 금지하고 있고, 대학 입학 정원의 총량을 규제하고 있다.대학의 입학 정원 총량을 늘리려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아니라 국토해양부 장관이 수도권정비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책이 시행된 뒤에도 수도권 인구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증가해 경기도 등에서 수도권 규제정책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는 상태다. 실제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의 서울 편중 현상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 5년간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 10개 가운데 9개가 서울 소재 학교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나타났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전국 100위권 이내인 고교 101곳을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서울은 49곳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서울대 입장에선 효과가 없는 수도권 인구억제 정책 때문에 정원만 희생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교과부-서울대, 물밑 논란 계속될 듯
‘서울대 정원 20% 복원’ 문제는 일단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올해 서울대 정원은 지난해보다 45명 늘어나는 것으로 정해졌다. 45명 증원도 서울대 치과대학원 신설과 함께 반납된 학부 정원을 되돌려 받은 것에 불과하다.서울대 정원을 둘러싼 물밑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다. 서울대 측은 현재의 정원에 대해 아쉬움을 크게 느끼고 있다.

서울대 주종남 기획처장은 본지에 “국가 경쟁력 향상에 필수적인 학문을 보호하고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국립 서울대의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라며 “일괄적인 정원 조정 정책은 보호해야 할 학문 분야에서 최소한의 교육 단위를 운영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주 처장은 “단기적 수요보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정원 조정과 같은 대학 정책이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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