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의 아웃이 있기까진, 끝난 건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6호 16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은 승부를 시간이 결정지을 수 없는 야구의 특성을 잘 살려준 명언이다. 야구는 9회까지지만, 마지막 스물일곱 번째 아웃이 사람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 한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 지난 12일의 보스턴 레드삭스- LA 에인절스, 13일 콜로라도 로키스-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기에서 이틀 연속으로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2점 이상 뒤지던 팀이 역전승을 거두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그래서 경기 전체 27개의 아웃카운트 가운데 마지막 하나의 가능성, 그 실낱 같지만 살아있는 불씨의 소중함이 한껏 부각됐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31>

에인절스의 기적은 그 가운데서도 백미였다. 4-6으로 뒤진 9회 초 마지막 공격. 마운드에는 레드삭스의 철벽 마무리 존 파펠본(시즌 38세이브)이 서 있었다. 그는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27이닝 무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으니 에인절스의 역전 가능성은 ‘0’이나 다름없었다. 메이서 이즈투리스, 개리 매튜스 주니어가 모두 파펠본의 불 같은 강속구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웃됐다. 이제 레드삭스가 에인절스를 꺾는 데 필요한 아웃카운트는 딱 ‘하나’였다.

9번 타자 에릭 아이바는 볼카운트 2-0으로 몰렸다. 이제 스트라이크 하나면 에인절스의 불씨는 꺼진다. 그 마지막 순간, 아이바는 중전안타로 불씨를 지켰다. 2사 1루. 션 피긴스는 2-3 풀카운트까지 갔다. 또 스트라이크 하나면 에인절스의 불씨는 꺼질 참이었다. 그러나 파울 하나를 걷어낸 피긴스는 기어이 볼넷을 골라 불씨를 살렸다. 2사 1,2루. 후속 바비 아브레이유 역시 볼카운트 2-1로 몰렸다. 또 마지막 스크라이크 하나가 아스라히 남았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한 개의 파울을 더 걷어낸 아브레이유는 왼쪽 담장을 맞히는 2루타를 때렸다. 5-6으로 추격하고 계속된 2사 2, 3루. 파펠본은 토리 헌터를 고의 볼넷으로 걸렀다. 만루를 만들고 역대 포스트시즌 19경기에서 1타점으로 철저히 약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상대하겠다는 거였다.

9회 2사후 9번 타자 아이바로부터 살려진 불씨가 피긴스-아브레이유-헌터를 지나 4번 게레로까지 왔다. 에인절스가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한 시간도, 누구도 그 불씨를 꺼트릴 수 없었다. 파펠본의 초구가 손끝을 떠나는 순간, 그 불씨는 다시 타올랐다. 게레로의 2타점 적시타가 터졌고 승부는 7-6으로 역전됐다. 마지막 아웃카운트, 마지막 스트라이크 하나로 몰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에인절스의 승리였다.

국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도 그랬다. 플레이오프에서 먼저 2패를 당한 SK는 두산과의 3차전에서 1-1 동점을 이룬 9회 말 2사 1, 2루까지 몰렸다. 마지막 안타 하나면 끝이었다. 위기였다. 그때 고영민의 잘 맞은 안타성 타구가 나왔다. 그러나 그 타구는 길목을 제대로 지킨 정근우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SK는 연장에서 이겨 살아났다. 그리고 그 모멘텀을 반전 삼아 결국 시리즈를 뒤집고 한국시리즈까지 갔다.
스트라이크 하나를 물고 늘어져 승부를 뒤집은 에인절스의 기적, 마지막 안타 하나를 내주지 않고 시리즈 전체를 뒤집은 SK의 반전은 우리가 일상에서, 인생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명분을 분명하게 제시해준다. 인생도 끝은 있지만 시간제 경기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