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굿 다운 로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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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02면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16일 막을 내렸습니다. 역대 최다 상영작(355편), 역대 최다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 상영작(98편) 소개라는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남기고서요. 열네 살 소년의 혈기가 자못 방자합니다. 무엇이 이 소년의 키를 이렇게 빨리 자라게 했을까요. 많은 사람이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저는 두 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우선 ‘영화인을 위한, 영화인에 의한, 영화인의 행사’라는 점이죠.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됐습니다. 개막식에서 정치인의 축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PIFF의 대표적인 원칙 중 하나입니다. 1회부터 대회를 이끌어온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자율성을 갖고 운영하지 않으면 문화 행사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역시 문화행사는 문화인이 중심이 돼야죠.” 두 번째는 그런 영화제에 온전히 자신을 던진 자원봉사자와 영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보여준 저력입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해운대를 찾았습니다. 티켓 담당 자원봉사자에게 표를 부탁했습니다. “아, 이건 벌써 매진됐는데요, 이것도요. 어떡하죠. 대신 이 작품은 어떨까요. 볼만하다고 하던데.” 그 표정에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9일 해운대 PIFF 빌리지에서 시작된 ‘굿 다운로더’ 캠페인을 보면서는 ‘사람들이 영화를 진짜 사랑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성기, 박중훈(사진), 장동건, 하지원, 엄정화, 김하늘 등 쟁쟁한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법적 다운로드를 호소한 행사는 끝났지만, 동참하려는 사람들의 줄은 주말 내내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 어디서 본 듯한 느낌. ‘금 모으기’와 ‘기름때 벗기기’에서 보았던 바로 그 순박한 열정이었습니다.

이 열정이 고스란히 전국으로 퍼져나가길, 그래서 우리 영화를 우리가 아끼고 살리고, 그 애정이 다시 PIFF를 더 활짝 꽃피울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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