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목되는 美기업의 북한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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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주한 미국 상의(商議)가 북한에 투자조사단을 파견하겠다는 발표는 남북경협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대단한 관심을 끈다.

미국은 이미 베를린 북.미 미사일회담 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보를 담보로 지난달 중순 대북 경제제재조치 해제를 밝혔고 미 상무부.재무부 등 관련 부처들이 적성국관리법.수출관리법 등에 근거한 제재 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투자단의 방북은 이에 따른 첫 민간기업 차원의 후속 움직임이자 경협면에서 실질적인 미국의 첫 대북 접촉의 의미를 갖고 있다.

주한 미 상의측은 이르면 다음달 중순 1차로 조사단을 파견하고 내년 초까지 네번 정도 방북조사단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과의 접촉을 위해서는 유엔의 북한대사관을 통해 방북을 신청한 상태로 이미 상당한 준비가 진행 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주한 미 상의의 이번 투자조사단 파견은 남북한간의 경제협력에도 상승작용의 기대를 낳고 있다. 사실 지난 1년여 동안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제외하면 남북한간에는 경협실적이 미미했다.

오히려 북한측은 현대와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면서 일반 경협을 외면하는 모습도 보여왔다. 따라서 남한을 아는 미국 기업들의 북한 진출은 남북한간 경협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도 있고 일본.유럽 기업들의 대북 진출 신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대미(對美)관계 정상화를 발판으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이런 면에서 보면 북한으로서는 미국 기업들의 조사단 파견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가속화하는 디딤돌도 되며 동시에 강경한 미 의회의 분위기를 녹이는 실익도 도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북한은 유럽 외무장관들과의 잇따른 회담 등 외자도입과 무역 활성화를 위해 대외관계를 다양화하는 자세를 나타내왔다.

그러나 주한 미 상의가 대북 접촉을 시작한다고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해선 곤란하다. 북한의 인프라 미비와 열악한 경제여건이 적지 않은 장애가 될 것이다.

실제 미국 기업들은 제재조치 완화 이전에도 코카콜라사가 대북 진출을, 곡물메이저인 카길이 북한의 마그네사이트와 곡물교환을 모색하다가 말만 오가고 불발로 그쳤다.

또 이에 앞서 수차례 북한을 방문한 유럽 기업들이 본격 투자를 주저해온 점이 이를 방증한다. 미 상의측도 신뢰구축이 우선이라는 신중한 입장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을 위해서도 미국과 한국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주한 미 상의가 현대 등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을 천명하고 통일부 등이 미국 기업들의 대북 진출에 긍정적 지원을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차제에 정부는 북한을 끌어내 경협확대에 필수적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분쟁조정절차 등 협의채널을 구축하는 데 더욱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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