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복지부의 총선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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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직장조합과 지역.공무원 - 교원조합으로 나뉘어 있는 의료보험 조직의 통합 시기를 당초 내년 1월에서 7월로 연기한 보건복지부의 정책변경 뒤에는 내년 총선에의 부정적인 영향이 고려됐음을 보여주는 복지부 문건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월 작성된 장관 보고용 문서에는 "내년초 통합공단의 업무혼란은 총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여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고 적혀 있다.

그렇지 않아도 복지부 결정에 '총선용' 이라는 비난이 많았던 터에 이같은 내용이 드러나자 야당측은 선거개입 행위라며 장관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오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문서가 작성된 시기가 소득 단일기준에 의한 의보료 부과와 이를 바탕으로 한 의보조합의 재정통합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아 자영업자의 의보료는 종전대로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하고 재정통합도 2년 유예키로 한 때였으며, 이같은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10월 이전에 국회를 통과해야 내년 1월 조직통합 때 업무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즉, 조직통합과 보험료 부과기준 변경에 따라 최소한 3개월 정도의 전산시스템 시험운영이 필요하므로 개정안이 빨리 통과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혼란이 생겨 총선에 부담이 된다는 점을 여당측에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복지부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문서가 작성된 때는 조직통합을 연기한다는 방침이 결정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보통합 정책의 혼선과정을 살펴보면 복지부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복지부가 주장하는 의보료 부과기준 문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정 때 소득 단일기준으로 바꾸었다가 현행대로 원상회복시키는 것이므로 전산시스템상에 새로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다만 조직통합에 따른 전산시스템이 문제지만 그것은 이미 연초에 결정된 사항이므로 복지부가 꾸준히 준비를 했어야 할 문제다.

시스템 시험운영을 못해 업무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면 그것은 복지부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업무혼란 운운하다가 결국 조직통합을 총선 이후로 미룬 것은 총선때 여당의 부담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의보통합이라는 중대한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선거때문에 시기와 내용을 함부로 바꾼다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상실도 문제려니와 정책추진 자체가 어렵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복지부 정책은 이익단체간의 이견이 첨예한 것들이 대부분인데 중심을 잡아야 할 행정부가 이런 식이라면 어떻게 일이 되겠는가.

의보통합에 반대하는 한국노총 등이 5백만명 서명을 받고, 즉각통합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들은 어제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들어가는 극단대립 상황에서 이제 복지부가 무슨 말로 한쪽을 설득할지 묻고싶다.

정권에 따라 행정부 정책은 바뀔 수 있지만 그것이 선거때문에 춤을 추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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