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의 행복한 책읽기] '그림 속의 그림-중국화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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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미셸 푸코는 저서 '말과 사물' 의 서두에서 벨라스캐스의 그림 '시녀들' 을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서구 인식론의 근거를 뒤흔드는 전복적 사유의 출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그림 한가운데 자리한 거울과 그것을 바라보는 그림 안팎의 시선들의 상호 얽힘이다.

이를 통해 푸코는 시선과 내상, 주체와 객체, 재현되는 것과 재현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굳이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이 아니라도 서구 회화에서 거울은 즐겨 다뤄지는 모티프라 할 수 있다.

고전적인 나르시시즘에서 포스트모던적인 자기 반영성에 이르기까지 거울이 담고있는 상징은 무한하다.

그런데 동양의 예술, 그 가운데서도 중국화에서 거울은 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다.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술사학자 우훙에 따르면 중국화에서 서양화의 거울에 견줄 만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비반사적인 병풍이다.

병풍은 공간을 점유하고 분할하는 가구의 하나지만 그 위에 그림이 그려지는 주된 매체이기도 하며 또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림 속의 그림-중국화의 매체와 표현)은 바로 이 병풍을 통해 중국화의 다양한 단면을 심층적으로 살펴본 연구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중국화하면 으레 산수화나 문인화를 떠올리고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정신적 의미나 필법, 준법 같은 것을 주로 따져온 기존 연구와는 구분되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대신 그는 구성이나 공간, 매체 등 서구적 개념과 시각논리로 중국화를 설명하며 그림을 그 시대의 문화나 생활양식과 겹쳐서 읽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을 그 시대의 문화나 생활양식과 겹쳐서 읽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 미술사의 쟁점을 예각적으로 다룬 서적이지 중국 문화론으로도 읽을 수 있는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병풍이란 모티프와 관련하여 저자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남당의 세 대가의 그림이다. 구홍중의 '한시짜이의 밤잔치' 에서 황제가 누린 배타적 관력과 관음증의 상호관계를 들춰내며, 저우원쥐의 '병풍 속의 병풍' 에선 여성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돼왔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또 왕치한의 '서적교감' 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연 이미지에 남긴 정치적 수사를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병풍화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만 이밖에도 두루마리, 족자, 벽화, 화상석, 삽화 등 여러 매체의 그림을 다루고 있으며 인물화 외에도 산수화와 문인화, 청대의 미인도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그림들이 원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정적이고 평면적인 것으로 여겨져왔던 중국화가 돌연 생기있고 의미심장한 구석을 내장하고 있는 동적이고 입체적인 대상으로 탈바꿈하는 사고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서구의 최신이론을 충분히 습득하고 적절히 변형해서 중국화에 적용함으로써 이 책이 거두고 있는 성과는 국내 한국화에 대한 연구에도 적잖은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진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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