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전' 펴면 미래가 보인다- 佛 자크 아탈리 21세기 예측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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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천재' 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56.컨설팅사 '아탈리&아소시에' 대표)의 98년작 '21세기 사전' (편혜원.정혜원 옮김, 중앙M&B.9천원)은 프랑스 언론의 평가처럼 '아주 특별한 사전' 이다.

4백여 주제어를 사전식으로 나열하고 각 주제어에 딸린 미래의 의미를 에세이처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단 집어들면 좀처럼 놓기 어려운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한사람이 집필했을 것으로는 믿기 어려울 만큼 현란한 식견들이 '지적 사치' 를 자극하고 있는 점이 그렇고 미지의 미래를 탁월한 예측력으로 진단하고 있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공학도 출신의 경제학 박사로서 강단에 섰다가 74년 미테랑 정부 때부터 91년까지 고문.특별보좌관 타이틀로, 이후 93년까지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초대 총재직을 역임하며 현실 정치.경제에 참여했던 저자의 특별한 경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탈리가 21세기를 풀어내는 두 개의 코드는 '유목(노마디즘)' 과 '가상현실(버츄얼리티)' 이다.

여기서 유목은 이미 1만년전에 자리를 잡은 농경적 정착문명의 개념을 일시에 뒤집는 것으로 도시유목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유목과는 개념을 달리한다.

이들 새로운 유목민은 유목 휴대품을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이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책.반지.그리고 노트북 컴퓨터다.

비록 컴퓨터로 만들어낼지언정 종이 책은 소멸하지 않으며 반지는 초소형 정보저장 및 교환수단으로 변신을 하고 특히 인터넷을 위해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가상현실과 하이퍼텍스트 개념은 바로 이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또 하나 색다른 단어는 '레고 문명' 이다.

이는 아이들의 레고 장난감에서 따온 신조어인데 미래문명의 다원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문명이 자유롭게 융합, 온갖 새로운 문명을 창출한다는 관점에서 이는 다문화주의와도 흡사하다.

이런 기본 개념에서 아탈리가 적고 있는 21세기는 무척 새롭고 때론 생소하기까지 하다. 가령 과거 역사에서 기억되는 단 두명의 인물은 마르크스와 셰익스피어. 또 달라이 라마에 대한 추종자가 점점 늘어난다.

예술가는 유목민이며 랩 음악이 주류를 이루면서 도시유목민들은 래퍼로 자리를 잡아간다. 아시아권에 대한 그의 관측은 21세기 후반 일본이 쇠퇴하면서 중국.인도가 급부상한다. 여기서 인도네시아가 중국에 이은 아시아 제2의 국가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시별로는 도쿄.싱가포르에 이어 상하이 옆 푸동(浦東)이 급부상할 전망. 21세기에도 성.과학.전쟁.노동.사랑.음악 같은 단어는 소멸하지 않는 대신 컴퓨터의 음성인식 시스템으로 인해 키보드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란 게 저자의 예측이다.

21세기 내내 석유부족 현상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눈에 띈다. 저자는 특히 '19세기〓자유' '20세기〓평등' 에 이어 '21세기〓박애' 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희망까지 말하지만 그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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