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국50주년 특집] 9.끝 싹트는 언론자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쓰촨(四川)성의 당(黨)기관지 쓰촨법제보(法制報) 편집국에선 지난달 2일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 신문의 인기란인 '여론과 감독(輿論與監督)' 이 명예 훼손죄로 고소됐다가 4개월여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재판은 중국 언론의 자유와 한계라는 측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쓰촨법제보가 여론과 감독 난을 신설한 것은 지난해 1월.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먼저 독자들의 투서를 실어주는 새로운 방식을 취했다.

관련 부처나 당사자들의 반론은 나중에 실었다. 당연히 독자들의 호응이 대단해 정부의 실책.부정부패를 질타하는 투서가 쇄도했다.

올해까지 실린 독자들의 투서 1백50건 중 80%가 사실로 드러났고 이중 60%가 바로잡아졌다. 명예훼손은 지난 3월 보도한 위룽(魚龍)향의 향장선거가 계기가 됐다. 이 신문은 탕쩌광(湯澤光)이 돈으로 표를 사 향장에 당선됐다는 독자의 투서를 게재했다.

그리고 한달후 '그런 사실이 없다' 는 관계 당국의 반론을 게재했다. 한때 부정선거 사범으로 몰렸던 湯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쓰촨법제보에 공개사과와 70만위안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1심에서 패했지만 '반론을 충실하게 게재했기 때문에 무죄' 란 이유로 2심에서는 승리했다. 재판까지 야기시킨 쓰촨법제보의 새로운 시도는 변모하는 중국 언론의 한 단면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신문들은 정책 홍보수단에 불과했다. 경비도 국가에서 지원받아 경쟁 없이 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혁개방과 함께 몰아닥친 시장경제의 바람은 언론 판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50년 2백53종이었던 신문은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78년엔 1백70종으로 줄었다.

정부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지 못한 신문들이 퇴출된 것이다. 하지만 개혁개방정책 이후 80년에서 85년 3월까지 중국에는 평균 이틀에 하나꼴로 새 신문이 창간돼 98년엔 2천53종으로 늘었다.

기자수도 건국 초기 1만명에서 지금은 55만여명. 전국 또는 성.시(省.市)급 이상의 TV방송국도 5백60개로 늘어나 통제에 한계를 느낀 중국 당국이 소규모 언론을 자진 폐간시키거나 통합을 유도하고 있을 정도다.

개혁개방은 언론의 질적 변화도 강요했다. 신문이 선전도구에서 벗어나 인민, 즉 독자 속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제 경영은 각 언론사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못박고 있다.

조선족 신문 중엔 몇달씩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하고, 상당수의 중국 신문사가 경영난에 봉착했다. 인민대학(人民大學)의 여론연구소 소장인 위궈밍(喩國明)교수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신문들은 판매부수를 확대하고 광고를 따내는 것밖에 길이 없다" 며 "결국 입맛에 맞는 기사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게 최선책" 이라고 설명했다.

계획경제 시대엔 정부 방침이 최대 뉴스였지만 시장경제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80년대말부터 중국 신문들은 증면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스포츠.레저.쇼핑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주말판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최근 가장 각광받는 쪽은 사회비리. 사회비리 폭로만큼 화끈하게 독자를 잡아당기는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국영 방송인 CCTV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도 부정부패와 비리를 고발하는 '초점방담(焦點訪談)' . 이 프로는 장쩌민(江澤民)주석 등 중국 수뇌부가 민심동향을 살피기 위해 빼놓지 않고 챙겨보고 있어 폭로된 비리는 거의 1백% 시정된다.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지난해 10월 직접 제작팀을 찾아 "인민의 입과 정부의 거울이 돼 개혁의 첨병이 돼달라" 고 격려했을 정도다.

앞다투어 사회비리를 파헤치다보니 기자들이 얻어맞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1월 전국우수신문 공작자로 표창받은 후난(湖南)성 방송국의 사오양(邵陽)기자는 가짜 상품들을 고발하다 폭행당했다.

8월에는 불법 노래방을 취재하던 관영통신 신화사(新華社) 기자 4명도 칼에 찔렸다. 중국 언론에는 아직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량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단순히 당의 선전도구라고 불리기에는 이미 변곡점을 지났다는 느낌이다.

개혁개방이 언론개혁을 촉발시켰다면 이번에는 다시 언론이 사회변혁을 가속화시키는 선(善)순환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