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절반 가량 부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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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출연기관인 모연구원에서 2급 관리관직을 맡아 일하던 尹모(45)씨는 지난해말 느닷없이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통보를 받고 해고됐다.

기획예산처의 구조조정 지침에 희망퇴직을 요청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자 쫓겨나게 된 것. 尹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차례로 진정, 지난 8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없는 정리해고는 인사권 남용" 이라는 판결과 함께 승소했다.

그러나 연구원측은 尹씨를 복직시키기는커녕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尹씨는 아직도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초 기업의 구조조정 회오리 속에 A은행에 다니던 李모(32.여)씨는 맞벌이 부부라는 이유 때문에 정리해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李씨는 곧바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 "생계책임이 적다는 이유로 여성근로자를 우선적으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 는 판정을 받았다. 李씨도 회사측이 행정소송을 내는 바람에 복직이 안된 상태다.

지난해와 올해 대량으로 추진된 정리해고 중 절반 가량이 부당해고인 것으로 밝혀졌다.

6일 중앙노동위원회가 국회 김문수(金文洙.한나라당)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앙 및 지방 노동위는 지난해 모두 2백70건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심판, 이중 1백4건(38.5%)에 대해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또 올 8월말 현재 1백13건의 구제신청을 심판, 이중 60건(53.1%)을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한편 공기업 정리해고와 관련, 노동위는 지난해 이후 올 8월말까지 64건을 심판했으나 이중 23건(35.9%)에 대해 부당해고 판정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공기업들은 해고자를 원직 복직시키는 대신 재심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 공기업 스스로가 정부기관의 판정에 불신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해고회피 노력▶노사협의▶공정하고 합리적 대상자 선정 등 4개 요건을 갖춰야 하며 이중 하나라도 미비될 경우 부당해고 판정을 받는다.

金의원은 "IMF위기를 틈타 노동자와 협의를 거치지 않거나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은 부당해고가 자행되고 있다" 며 "특히 민간기업의 모범이 돼야 할 공기업에서 불법 정리해고가 많다는 것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구조조정의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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