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론탄압 유형과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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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언론탄압의 유형은 다양하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서 그 수법도 달랐다. 학문적으로 보자면 대개 정치적 통제, 경제적 통제, 사회적 통제 등의 유형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유형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탄압도 얼마든지 있다.

영국은 의회제도와 언론자유를 발전시킨 민주주의 요람이면서 언론을 억압하는 방법을 동시에 개발했던 역사를 지닌 나라다.

인쇄업조합(Stationer' s company.1557)에 독점적인 특권을 부여해서 언론에 구조적인 통제를 가했고, 출판법(Printing Act.1662), 인지세법(Stamp Act.1710) 등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법적 장치들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도 검열을 실시했던 언론통제의 주체였다. 1559년에 가톨릭은 금서목록을 공포해 이 목록에 포함된 책은 팔고 사거나 읽지 못하도록 했고, 목록은 주기적으로 추가 보완했다.

1966년이 돼서야 금서목록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언론의 역사는 이처럼 탄압과 이에 대응하는 투쟁의 역정(歷程)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에는 총독부 경무국에 '검열계' 가 상설기구로 설치돼 있었다. 필자는 일제하 3대 민간지의 압수기사를 모아 지난해에 1천4백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2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개명천지 20세기에도 빈번히 일어났던 가장 원시적인 탄압은 폭력이었다. 자유당 시절 백주에 자행된 대구매일 테러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사기관에서 불법으로 언론인을 연행해 고문.폭행하는 일도 흔히 있었다. 물리적인 폭력에 언론은 공포에 떨면서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화로 이행되는 과도기였던 1987년 9월에는 이후락의 김대중 납치사건 증언기사를 실은 신동아와 월간조선의 인쇄를 정부기관이 방해한 사건도 있었다.

정치적인 보복으로 법적 제재를 남용해 언론인을 투옥하는 탄압도 애용됐다. 1964년 경향신문 사장 이준구(李俊九)씨를 구속해 신문사를 경매에 부치는 사태도 있었고, 같은 해 '세대' 잡지에 실은 논문이 문제가 돼 문화방송 사장 황용주(黃龍珠)씨가 구속됐던 사건은 야당의 정치공세에 밀려 일어난 필화였다.

언론사 사장의 구속까지 몰고왔던 글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등 남북한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극히 소박한 가설에 지나지 않았다.

경제적인 제재는 언론의 사활이 걸린 탄압이다. 1964년의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 때는 "협력을 거부하는 언론사에 대해 일체의 특혜와 협조를 배제한다" 면서 국무회의에서 보복조치를 결의한 일까지 있었다.

관공서와 공무원의 구독거부, 신문용지 배정과 은행융자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소속사 기자의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았고, 야간통행증을 회수해 취재와 발송에 지장을 주었다.

세무사찰은 언론의 경영주를 압박하는 가장 치명적이면서 따라서 효과적인 수단이다. 1962년 6월, 서울 광화문 세무서는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이 세금을 체납했다는 이유로 공매처분에 부치겠다는 공고를 낸 적이 있었다. 경영상의 탄압으로 언론을 목조르는 조치였다.

1974년 말에서 이듬해 초까지 이어진 동아일보 광고탄압은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됐을 정도로 너무나 널리 알려진 사건이므로 상세히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지경이다. 언론통폐합, 언론인 집단 해직, 비위에 맞지 않는 언론인의 인사조치 요구 등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고전적인 탄압방법이다.

언론탄압이 권력만의 독점물은 아니다. 재벌.광고주.종교집단.압력단체.사회적 관습에 의한 금기 등 사회가 다원화할수록 언론을 억압하려는 세력도 늘어난다.

우리의 언론은 그와 같은 탄압 속에서 성장했다. 언론인들의 용기와 희생, 그리고 국민의 성원이 오늘의 언론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언론은 과거의 경험에서 오늘의 난제에 대처하고 미래를 준비할 교훈을 도출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언론은 언제나 옳았던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탄압에 의연히 맞서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깨끗해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자성에 바탕하는 개혁과 투쟁이 병행돼야 언론은 국민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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