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무더위가 남긴 것은 '노출은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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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무더웠던 올 여름이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있다. 이제는 아득한 향수로 느껴지는 지난 폭염 속에서 노출 패션은 당당한 시민권을 획득했다. 7.8월의 수은주는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한 남부지방은 말 할 것도 없고, 서울도 10년만의 최고기록인 36도를 넘어섰다. 불타는 듯 뜨거웠던 아스팔트를 견디기에 민소매로는 모자랐다. 끈만 살짝 남긴 채 어깨와 등판을 절반쯤 드러낸 웃옷은 더이상 눈흘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경향은 조인스닷컴 이병구 기자가 올 여름 동안 서울 주요 번화가에서 카메라에 담은 거리패션에서도 확인된다. 차분한 앞모습만으로는 모를 일. 뒷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목둘레만 남기고 어깨와 등이 과감히 드러나는 '홀터 넥', 마치 속옷같은 겉옷의 '란제리 룩'이 잡지화보에서 걸어나온 듯 도시를 활보했다. 가슴 가운데 골짜기를 살짝 보여주는 '클리비지 룩'역시 할리우드 스타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이런 겉옷에 어울리는 속옷도 각광을 받았다. 어깨끈을 투명소재로 처리하거나 아예 끈을 없앤 브래지어는 여름 패션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허리 아래도 한층 가벼워졌다. 다리를 시원하게 드러낸 숏팬츠와 미니스커트는 편안한 트레이닝복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듯 널리 사랑을 받았다. 탱크탑 스타일의 짧아진 웃옷과 낮아진 바지선 사이로 살짝 살짝 드러나는 허리는 애교스럽다. 노출된 피부가 섭섭할까봐, 여름 한철용 문신을 새기는 멋쟁이들도 카메라에 잡혔다. 대담하고 경쾌해진 것은 디자인만이 아니다. 이왕에 시선 끄는 대담한 디자인이라면, 밝고 가벼운 색상이 금상첨화다. 특히 '웰빙'시대의 대표 색상인 녹색과 잘 어울리는 분홍색이 전례없이 도시 곳곳을 수놓았다. 이병구 기자의 동영상에서 악세사리까지 꽃분홍으로 차려입은 아가씨의 옷맵시를 놓치지 마시길. 브랜드 '아가씨'의 디자이너 이경원씨는 올 여름 거리패션을 "로맨티시즘과 섹시함의 결합"으로 요약했다. 신체의 다양한 곡선을 가감없이 드러낸 디자인이 섹시함의 표출인 것으로 당연지사. 찬찬히 살펴보면 면 티셔츠 하나에도 주름장식이 들어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는 디자인이 강세였다는 분석이다. 남성들도 마찬가지. 왕년의 여름을 주름잡던 면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는 간데없고, 여성복 뺨치게 화려한 꽃무늬의 로맨틱 룩이 패션리더들의 기호로 자리잡았다. 노출시대의 이면에 숨은 키워드는 '웰빙'혹은'몸짱'이 꼽힌다. 잘 다듬어진 몸매, 이를 과시하고픈 욕망이 과감한 노출에 자신감을 줬다는 설명이다. '유기농''헬스''요가'가 상종가를 치는 '몸'의 시대가 도래한 이상, 노출은 올해만의 반짝 트렌드가 아니다. 갈수록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으리란 전망이다. 여름마다 '눈 둘 데 없다'고 푸념했던 분들이라면, 시대변화에 눈을 맞추는 게 낫다는 얘기다. 설마 이런 패션이 근엄한 사무실까지 들이닥칠까 한다면, 정답은 히트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이미 내놨다. '파리의 연인'의 김정은식 쁘띠 가디건 하나만 걸쳐주면 보수주의 검색대를 무사통과할 차림으로 변신완료다. '풀하우스'의 한은정식 브래지어 패션이 홍보성 논란을 빚는다지만,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럴까. 디자이너 이경원씨는 "스포츠브라만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머잖아 길거리에서 눈에 띄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글=이후남 기자 영상=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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