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선방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선방 가는 길, 정찬주 지음, 유동영 사진
336쪽, 열림원, 1만1000원

선방(禪房)은 부처의 깨달음을 좇는 스님이 머물며 몸과 마음을 바치는 곳을 이름이다. 부처가 다다른 선의 자리를 순수하게 지키고 닦는 수련장이요, 부처가 밝힌 진리의 등불을 꺼지지 않게 이어 가는 전등의 도량이다. 소설가 정찬주(51)씨는 지난 20여 년간 전국의 선방을 찾아 치열하게 부처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스님들을 만났다.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잘 사는 길인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던 그에게 선방에 든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인생의 길을 찾는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의 답이 될 듯하다.

백양사로 서옹 큰스님을 찾아 간 나그네가 묻는다. “불교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제정신이 없이 살고 있어. 술 취한 듯, 꿈을 꾸듯, 미친 듯이. 불교란 제정신으로 깨어서 살자고 보채는 종교지.” 나그네 정찬주는 문득 ‘마음이 곧 부처’라는 한마디에 귀의해 세월을 잃고 숨어살던 중국의 법상선사를 떠올린다.

봉암사 선원장 정광 스님의 말씀은 한결같다. “화두(話頭) ‘이 뭐꼬’를 드는 데는 출가자·재가자의 구별이 없지요. 화두를 들려고 따로 시간을 정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아무 때나 생각날 때 드십시오. ‘이 뭐꼬’를 드는 순간 앞뒤의 시간이 잘리니 과거와 미래가 사라집니다. 그리하면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 자기 본래 모습을 보게 되지요.”

백양사 운문암 운문선원에 든 나그네는 문득 단전의 생살이 타는 냄새를 맡는다. 치열하게 화두를 밀어붙이는 선방의 스님들에게 열이 올라 그런다는 답을 듣고 생각한다. “그렇다.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고, 너와 나를 편가르지 않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있는 그런 참모습이 바로 ‘본래의 나’ 이자 ‘행복한 나’이리라. 그러니 누구라도 당장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참선아, 놀자’ 하고 어화둥둥 선을 껴안아 볼 일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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