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체첸 전면전 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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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 김정수 기자]제2의 체첸전쟁이 사실상 시작됐다. 러시아군의 대규모 체첸공습이 닷새째 계속되는 가운데 이고르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26일 지상군 투입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지난 94~96년 50여만명의 희생자를 냈던 체첸전 악몽이 이 지역을 다시 한번 긴장시키고 있다.

◇ 진행 상황=지난 23일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공습으로 체첸내 TV센터, 병원 한곳, 정유시설 등이 파괴됐고 사상자 숫자도 3백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은 25일 밤 체첸 난민들의 마지막 탈출구인 체첸-잉구셰티아 사이의 국경도 봉쇄했다.

이에 따라 잉구셰티아 국경지대에는 4만여명의 난민들이 15㎞가 넘게 줄을 서 탈출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잇따라 발생한 폭탄 테러사건을 계기로 ▶체첸과 러시아간의 국경봉쇄 ▶체첸내 반군지역에 대한 공습강화 ▶지상군 공격준비 등을 순서대로 진행시키고 있다. 러시아 내부의 대(對)체첸 여론이 악화된 데 따른 것이다.

세르게예프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반군들을 몰아내 체첸 전역에 국방차원의 안전지대를 설립하겠다" 며 "상황에 따른 여러가지 지상전 방안들이 마련돼 있다" 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도 "체첸 자치정부가 체첸 반군을 통제하지 않고 국제테러 조직이 계속 활동한다면 96년의 평화협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고 체첸을 압박했다.

이런 강경론은 26일 여론조사에서 푸틴을 처음으로 차기대통령 유력후보 6위로 올라서게 했을 만큼 러시아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 체첸측 대응=내부 분열 때문에 당장 무력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온건파인 아슬란 마스하도프 대통령 아래서 정권을 장악해 온 4개 군벌들은 지금까지 전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대러 협상을 통한 독립을 주장해왔다.

마스하도프는 아직 러시아에 대화를 통한 사태의 해결을 요청하는 한편 유엔 등 국제사회에 감시단 파견을 호소하는 등 유화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반면 샤밀 바사예프 등 강경파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세력과 결탁해 강경투쟁을 선동하고 있다. 바사예프 진영은 이미 마약밀매를 통해 상당한 자금을 축적했으며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면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게릴라 투쟁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체첸내 강.온파는 마스하도프에 대한 잇따른 암살기도와 쿠데타 음모 등으로 봉합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체첸내 여론이 강경대응쪽으로 돌아서고 있어 마스하도프가 바사예프와 제휴, 러시아와 전면전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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