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나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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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민족문화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화' 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오늘날의 지식인이 감당해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민족의 대학, 세계 속의 대학' 이라는 영남대학교의 건학 기념에서도 드러나지만, 지난 95년 가을에 열린 개교 50주년 기념 학술회의의 주체인 '세계화 시대의 민족과 문화' 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민족문화연구소와 인문과학연구소 그리고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영남대 인문학파' 의 인문학적 활력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학자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보장해주는 자유분방한 지적 풍토에서 저절로 형성된 것이다.

전공의 좁은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는 다양한 학제적 연구와 부전공으로서의 왕성한 사회 활동은 어느덧 영남대 인문학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산소가 부족했던 70, 80년대에도 이곳 압량벌에서는 숨쉬기가 자유로웠고 (교수회의에서 평교수가 인문학적 관점에서 총장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예사였다) , 해마다 1학기가 끝나는 6월이면 총장 이하 전교직원이 모여 구계서원 (龜溪書院)에서 바둑대회 겸 구계 (狗鷄) 파티를 열며 소주잔을 나누는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유목민 (遊牧民) 의 전통이 90년대 이후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교문과 담장이 없는 캠퍼스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숲에서는 오늘도 삼삼오오 산책하며 살찌우는 '영남대 인문학파' 의 담소가 그치지 않고 있다.

정지창교수 <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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