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친일 괴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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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어이 긴또깡 너 조심해"
서울 종로경찰서 앞
풀려나는 김두한을 향해
매서운 눈을 번뜩이며
경고를 '날리던'조선인 순사.

"대 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긴 칼을 옆에 찬 채
말을 타고 찾아와
청년을 끌고 가던 조선인 헌병.

"땅을 우리에게 넘기시오"
검은 장부책을 들고 와
농민의 몇 안 남은 논밭마저
빼앗아가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인 직원.

이완용이니 오적(五賊)이니
악명 높은 친일파도 있지만
이름 모를' 힘 없는'사람들을
괴롭혔을
이름 모를 순사 헌병 직원-.

하지만 세월은 흘러
이름 모를 순사 헌병 직원은
사라지고
그들의 아들과 딸만 남은 지금.

언제, 누구 앞에서 터질지 모를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누구 아버지는 헌병이었다'
'누구 아버지는 소좌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령이
현실세계를 '요리'하는
맹랑한 세상-.

역사는 역사로 남게 하되
유령은 유령으로 남게 하는
지혜의 주머니는
우리에게 없는 걸까.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에 이어 최근 이미경 상임위원 부친의 헌병 복무 사실도 밝혀졌다. 인터넷에는 '정치인 누구 누구의 아버지.할아버지가 헌병.순사였더라'하는 친일 괴담이 떠돌아 정치인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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