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 둘러싼 적대 100년 터키·아르메니아 수교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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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경을 맞댄 이웃이면서도 100년 가까이 반목해온 터키와 아르메니아가 극적으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1910년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으로 원수가 된 양국이 1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국교 수립과 관계 발전 의정서에 서명했다고 BBC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서명식에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대표 등이 참석했다.

양국 화해에는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회복을 통해 EU 가입의 걸림돌을 제거함과 동시에 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는 터키의 이해가 작용했다. 또 아르메니아는 터키와의 교역 확대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룩하려 한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가 반목하게 된 것은 1915~18년 오스만 제국이 독립을 요구하는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추정)을 학살한 사건 때문이다. 오스만군은 1915년 4월 아르메니아 지식인 300여 명을 처형한 것을 비롯해 대량 아사로 이어진 시리아 사막으로의 강제 이주 등을 단행해 수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을 희생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는 오스만 제국을 승계한 터키 정부가 대학살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하지만 터키는 “1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양국 국민 간의 단순충돌 사건으로 희생자가 나왔을 뿐 고의적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협정에서 양국은 대학살 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공동 조사단을 꾸리는 데 합의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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