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치 담아낸 하창수 콩트집 '행복한 그림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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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장르에 묶이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모든 예술가의 꿈.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을 곁들여 '행복한 그림책' (늘푸른 소나무.7천5백원) 을 펴낸 소설가 하창수 (39) 씨는 그런 꿈을 이룬 행복한 사나이다.

경영학도이자 고시준비생이었던 하씨가 87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창작집 '수선화를 꺽다' .장편 '원룸' 등을 펴낸 소설가가 된 것도 예사롭지는 않지만, 서문에서 고백하는 그의 고교시절 꿈은 화가였고, 더 거슬러 초등학교 시절의 꿈은 만화가였다.

대학시절 박수동만화 '고인돌' 에 대한 김현의 평론을 읽으면서 다시 한차례 꿈틀거렸던 이 '꿈' 은 소설가가 된 후 접한 프랑스 만화가 모리스 앙리의 작품을 통해 "만화도 예술" 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우리가 눈감아 버렸던 진짜 현실의 세계를 정확히 건져올린 초월적 상상력의 갈코리" 라고 만화의 매력을 표현하는 하씨는 우화적인 콩트 50여편에 직접 한 컷씩의 만화같은 그림을 곁들여 이번 '그림책' 을 만들었다.

종이 위에 그리거나 컴퓨터 마우스로 작업한 그림들의 간명하고 단정한 선이 보여주듯, 하씨의 콩트들은 세상의 이치가 의외로 단순한 곳들에 숨어있음을 드러낸다.

책말미에는 습작시절부터 하씨가 틈틈이 만들어온 '나만의 사전' 이 실렸다.

다음은 그 중의 한대목. "선 (禪) - 우리들 몸에 새겨지는 석불 (石佛) .마음의 정 (錠) 으로 쪼아야만 새겨지는 철불 (鐵佛) .마침내 한 올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무불 (無佛) .그 아름다운 경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림자조차. "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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