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땅에 첫발 디딘 권희로씨] '오늘부터 한국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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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처럼 살아왔지만 오늘부터는 한국 사람으로 살겠다."

재일동포 무기수 권희로 (權禧老.71) 씨가 일본 형무소 복역 1만1천5백6일 (31년6개월) 만인 7일 오후 1시38분쯤 꿈에 그리던 고국에 감격의 첫발을 내디뎠다.

權씨는 이날 오전 3시50분 일본 도쿄 (東京) 의 지바 (千葉) 형무소에서 석방되자마자 나리타 (成田) 공항으로 직행, 오전 11시43분 일본항공 (JAL) 957편을 타고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비행기가 김해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 눈물을 흘렸고 생전에 자신과 함께 귀국하고 싶어했던 어머니 (朴得淑.98년 11월 작고) 의 유골을 태극기에 싸 가슴에 꼭 껴안고 트랩을 내렸다.

權씨는 고령에다 오랜 수감생활 탓인지 상당히 여윈 모습이었으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기대 때문인지 표정은 밝고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단정한 회색 양복차림에 체크무늬 모자를 썼다.

權씨는 "동포들에게 걱정을 많이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 아직 우리 말이 서투르지만 동포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배워 한국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하겠다" 고 귀국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어머니가 고향을 그토록 그리워했는데 지난해 11월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지만 잘 보살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말을 했다.

權씨는 공항 의전 주차장에서 후견인 박삼중 (朴三中) 스님이 주지로 있는 부산 자비사 신도와 자민련 이건개 (李健介) 국회의원 등으로부터 환영 꽃다발을 받고 '만세' 를 부르는 등 간단한 귀국행사를 가졌다.

權씨는 자비사로 떠나면서 모자를 벗어 취재진 등에게 인사를 했으며 귀국 30분전쯤 비가 그친 맑은 고국의 가을 하늘을 한참동안 올려다 보기도 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자비사에서 어머니의 유골을 봉안하고 예불을 올렸다.

權씨는 오후 5시 해운대 조선비치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이 호텔에서 고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 일본 석방 = 權씨는 이날 오전 3시50분 지바시의 지바형무소에서 비밀통로를 통해 석방됐다.

70여명쯤 되는 보도진 등을 따돌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삼엄한 경계 속에 방탄 왜건을 타고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직행했다.

공항에는 보도진 1백여명이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權씨는 공항 구내 법무성 시설에서 5시간 정도 대기하며 휴식을 취하고 소지품 검색을 받는 등 출국 수속을 마쳤다.

이 곳에서 어머니 박득숙씨의 유골을 건네받은 權씨는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해주십시오" 라고 외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오전 10시50분 유골함을 목에 걸고 여행가방 2개와 옷가방을 양손에 든 채 탑승대에 올랐다.

權씨는 탑승대를 향해 10m 가량 걷는 동안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앞만 보며 묵묵히 걸어올라갔다.

일본 법무당국과 경찰에서는 폭력단이나 우익단체의 테러 등 權씨의 신변에 발생할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출감에서부터 호송은 물론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삼엄한 경호를 펼쳤다.

權씨가 탄 호송차에는 법무당국의 노란색 완장을 두른 호송요원 10여명이 앞뒤로 동승했으며 탑승장 주변에는 지바현 경찰 및 공항경찰 소속의 정사복 경찰관 30여명이 나와 주위를 경비했다.

權씨의 가석방은 도쿄 보호관찰소의 보호관찰이란 명목하에 거주지역도 일본으로 제한됐으나 "한국에서의 생활이 갱생을 위해 적당하다" 는 관찰소장의 판단에 따라 출국을 허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부산 = 손용태.강진권.정용백 기자, 도쿄 =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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